기획 완결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힘없는 중립외교는 사상누각 꼴!”

입력 2016. 12. 1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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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덴마크 ①


 중립 선포 했지만 히틀러 침공

4시간 만에 전 국토 점령 당해

1945년 해방 군사동맹 필요성 절감

나토·유엔 평화유지군 적극적 활동

 

궁전 내 왕립무기·군마·마차박물관

수백 년 전쟁역사 시대별로 생생히

 

 

 

코펜하겐 왕립무기박물관 내부 전시물.

 

 

 


독일 북쪽 유틀란트 반도에 있는 덴마크는 대서양과 발트 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14세기경 덴마크는 노르웨이·스웨덴·발트 연안 지역까지 지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 거듭된 전쟁패배로 손바닥만 한 작은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발트 해 강국으로 군림했던 덴마크

오늘날 덴마크는 한반도 면적의 5분의 1 정도이고, 5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은 거의 없고 평야가 많으며, 국토의 10%를 차지하는 숲은 대부분 인공조림이다. 특히 낙농업으로 유명하고 수산업, 철강, 기계공업 등이 발달했다.

1397년 덴마크왕국은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발트 해 연안까지 지배한 강대한 국가였다. 그러나 1801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와 함께 영국에 패함으로써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했다. 뒤이어 1864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도 많은 영토를 빼앗겨 오늘날의 덴마크로 남게 됐다.


왕궁 근위병 교대식 모습.

 


코펜하겐 항구 해안의 인어 동상.

 

 

 

근위병 교대식·무기박물관 군사전통 재현

덴마크 여왕과 왕족이 거주하는 코펜하겐 중심부의 아말리엔보르(Amalienborg) 궁전! 이곳에서는 매일 정오 성대한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 빼곡히 모여든 관광객 뒤편에서 카메라를 치켜들었지만, 사진촬영도 어려웠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 여행객들의 탄성 소리. 유럽 관광명소에는 빠짐없이 한국인들로 붐빈다. 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큼직한 곰 털 모자와 흑·청색 유니폼의 근위병 행진은 강성했던 덴마크의 역사를 보여 주는 듯했다.

수백 년 동안 발트 해의 중심도시였던 코펜하겐에는 옛날 왕궁들이 많이 있다. 특히 크리스티안보르(Christiansborg)궁전의 왕립무기·군마·마차박물관에는 시대별 역사자료가 잘 전시돼 있었다. 또한 국립박물관, 카스텔레요새, 레지스탕스박물관, 유대인기념관에 가면 수백 년 동안의 덴마크 대외 투쟁사를 더욱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덴마크 대외전쟁 승전기념탑.

 

 

 

단 4시간 만에 무너진 중립외교

1940년 4월 9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코펜하겐 시민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독일군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덴마크는 중립을 선포했고, 외국군 진입을 거부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연합군 침공으로부터 덴마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황당한 논리로 불과 4시간 만에 전 국토를 점령했다.

당시 덴마크군 병력은 1만5000명. “덴마크가 저항하면 아름다운 코펜하겐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라는 협박과 함께 4만 명의 독일군은 전격적으로 이 작은 나라를 휩쓸었다. 독일군 수송선은 아무런 저항 없이 코펜하겐 부두에 닻을 내렸고, 기계화 부대는 국경선을 넘었다. 공수부대가 인근 비행장에 낙하하면서 산발적인 총격전 끝에 덴마크 근위부대와 육군사령부를 제압했다. 그리고 저공으로 비행하는 수십 대의 공군기는 요란한 굉음으로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완전하게 꺾어 버렸다. 그때야 덴마크 국민들은 “힘없는 중립외교는 구두선(口頭禪·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이 없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고한 집단안보체제로 생존 보장

왕립무기박물관은 덴마크군 역사와 피점령국 백성들의 고통을 전시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국가자산은 약탈당했고 경제는 피폐했다. 아이슬란드조차 덴마크령에서 떨어져 나갔다. 1945년 5월 5일, 독일군 압제에서 해방된 덴마크는 뒤늦게 군사동맹이나 집단 안보체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이 나라는 1949년 나토(NATO) 회원국이 됐고, 세계 분쟁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PKF)을 수시로 파병했다. 심지어 아프간·이라크전쟁에 수백 명의 전투 병력이 참전했다. 전시관 마지막 코너에 PKF 장병 시가행진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사진이 오늘날 덴마크 국방정책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덴마크인 피땀이 녹아든 카스텔레 요새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 동상’은 길이 80㎝의 조그마한 조각상이다. 이 작은 동상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바로 이 ‘인어 동상’ 옆 별 모양의 ‘카스텔레 요새’는 1662년 이후 코펜하겐을 방어하는 견고한 성채였다. 넓은 성곽 내에는 수백 년 전에 건축된 황갈색 병영막사들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했지만, 이 요새 주변에는 전몰장병추모 동상·전승비·화포·기념관 등 많은 군사유적이 남아있다. 바다와 연결된 40m 폭의 해자, 높고 견고한 토성은 평소 전쟁에 대비해 덴마크인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필자 제공


 

 

 

국민 개인소득 6만2000달러

현역 군인 1만7200명 징병제

오늘날의 덴마크는?

덴마크는 인구 558만 명, 국토넓이 4.3만㎢, 연 국민 개인소득은 6만2000달러이며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군사력은 현역 1만7200명, 예비역 5만3500명이며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Military Balance 2015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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