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음악

다른 영화 같은 음악…30년 세월에도 그 감동 그대로

입력 2016. 11. 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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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음악


바그너의 오페라 일부인 ‘발키리의 기행’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이어 ‘작전명 발키리’서도 사용

‘적을 유린하라, 신도 함께한다’ 강한 전승 의지 담아

 

 

 

 

 

 



전쟁영화에 사용되는 음악들은 역시 예사롭지 않다. 몇몇 작품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암시하고 생각하게 한다. 전쟁음악은 많지만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1979년 개봉한 ‘지옥의 묵시록’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작품 ‘플래툰’과 함께 대표적인 베트남전 영화로 꼽힌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뒤 ‘미국이 진 유일한 전쟁’이라는 자괴감과 더불어 전쟁 개입의 정당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당시의 사회상(베트남 신드롬)을 다룬 영화다.

전쟁이 우리 인간의 본성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수작으로 평가된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부분인 전투 장면에 주목해 보자. UH-1H와 500MD로 혼합 편성된 공격헬기들이 베트콩이 은거한 마을을 향해 로켓과 기관총 공격을 퍼붓는다.

헬기들이 주둔지를 출발해 해안을 따라 저공으로 접근할 때 흘러나온 음악은 공중 공격이 진행되는 내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당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휘발유 4000L와 실제 네이팜탄을 사용할 정도로 많은 공을 들였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돼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그런데 이 무자비하고도 폭력적이기만 한 장면이 매우 장중하면서도 기괴한 분위기의 클래식 음악을 배경 삼아 재창조됐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영화

2008년 개봉된 톰 크루즈 주연의 ‘작전명 발키리’는 1944년 7월 20일 벌어진 반나치 인사들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영화다. 히틀러 반대 세력이 은신처에 폭탄을 터트리고 정부 전복을 꾀했으나 실패하면서 오히려 많은 장성과 정치인들이 숙청당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 영화에서는 지옥의 묵시록과 똑같은 배경음악을 사용했다.

‘작전명 발키리’에서는 이 음악이 두 번 등장한다. 초반부에는 집에 돌아온 주인공(스타우펜버그 대령)이 가족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축음기를 통해 흘러나와 연합군 공습의 전조로 활용되면서 위험·공포 등 불길함을 증폭시킨다. 후반부에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폭격기들이 베를린을 공습하는 장면에 사용돼 그 무게감을 더했다. 헬기 공습처럼 박진감은 없으나 전체 진행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영화 제목은 실제 2차 대전 중에 독일이 세웠던 작전계획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독일은 점령지로부터 유대인·집시 등 수백만에 달하는 민간인과 포로를 끌고 와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해놓고 보니 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혹시나 있을 우발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2년 이들의 폭동·반란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했다. 바로 ‘발키리 작전계획’이다.

 

 


오늘 네 수급을 거둬 가리라

필자가 이 두 영화를 꼽은 이유는 말 그대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배경음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영화의 제작 시기가 무려 30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곡명은 모르더라도 멜로디는 익숙해 누구나 흥얼거릴 정도로 유명한 이 곡은 ‘리하르트 바그너’가 1876년 발표한 오페라의 일부다.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제3부(발키리) 중 제3막 ‘발키리의 기행’이다.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여신이다. 신화의 시작은 착한 신 발두르가 죽은 뒤 신족과 거인족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 대부분이 죽고 몇몇 인간만 살아남아 세상을 재건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라그나로크(Ragnarok)’로 불리는 최후의 전투를 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오딘은 지상의 영웅들을 거둬 천상의 발할라로 데려와 전사로 삼았다. 오딘은 이 임무를 자신의 아홉 딸 발키리에게 맡겼다. 이들은 하늘을 나는 천마를 타고 지상의 전쟁터를 다니며 죽은 전사자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전쟁과 죽음의 신이다. 어원상으로도 ‘죽이다’를 뜻하는 ‘발르(Valr)’와 ‘선택하다’라는 뜻의 동사 ‘쿄사(kjosa)’가 합쳐져 “전쟁터에서 죽을 사람을 선택하는 자”를 의미한다. 우리의 ‘저승사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베트남 전쟁의 공격헬기와 베를린 공습의 폭격기는 하늘에서 천마를 타고 내려온 저승사자 발키리를 상징한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깔리는 바그너의 음악은 간단한 3개의 동기(가락을 이어주는 최소 단위)로 구성돼 있다. 처음 등장하는 “딴따라 딴따다다”는 발키리가 타는 천마의 발굽 소리를 의미하고, 바이올린을 위에서 아래로 긁어내리면서 내는 음은 말의 거친 숨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장엄한 관악 합주는 말을 탄 발키리의 모습과 이어져 청중을 전율케 한다.

결국 이들 영화에서 배경음악의 역할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적에게는 “오늘 네 수급을 거둬 가리라”라는 강한 나의 의지를 과시하고, 아군에게는 “오늘 적을 마음껏 유린하라, 신도 우리와 함께한다”라는 전승 의지와 함께 전폭적인 지지·후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윤동일 북극성 안보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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