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소설가 김별아가 쓰는 엄마의 병영일기

여수 충무공의 발자취 따라

입력 2016. 11. 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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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3사단 서혜준 일병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에게

혜준! 바람이 제법 차다. 당직 대기로 철야 근무를 하면서 혹시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니? 여럿이 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잔병치레를 하기 쉬운데, 환절기일수록 위생과 영양에 신경 써서 건강을 지키도록 애쓰길 바라.

지난주에 엄마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문학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전남 여수에 다녀왔단다. 이십 년 만에 아들 밥걱정이나 뒤치다꺼리할 걱정이 사라지니 비로소 홀가분히 길을 나서는데, 터미널이며 역에는 왜 그리도 아들을 닮은 아들들이 많은지! 가슴팍에 작대기 두 개를 붙이고 나온 병사들을 볼 때면 꼭 너만 같아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뚫어지라 바라보곤 해.

다들 바쁘게 총총걸음을 하는데 표정만으로 휴가를 나온 아들과 복귀하는 아들을 알아볼 수 있겠더구나. 휴가를 막 나왔을 때는 한껏 기대에 부푼 설렘 가득한 얼굴, 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는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 이 시대의 청춘은 어찌 그토록 아름답고도 외로운지, 모두가 몸과 마음을 다치지 말고 의무를 충실히 다하길 남몰래 기도했단다.

시상식보다 조금 일찍 여수에 도착해 시내 여기저기를 쏘다니노라니 꼭 그처럼 아름답고도 외로운 이가 또 있더라.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그때의 경상좌수영에서 지금 군 복무 중인 너를 떠올리며 둘러보았단다.

때마침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임진왜란 때는 진해루였다가 전쟁이 끝난 후 삼도수군통제영이자 조선 수군의 중심 기지가 된 진남관에서 여수 앞바다를 바라보았어. 진남관 바로 앞이 이순신 광장인데 그곳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모형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더구나.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과 다르게 여수의 장군님은 거북선을 발아래 딛고 큰 칼과 지휘봉을 들고 당장에라도 왜군을 향해 불퇴전의 공격 명령을 내리실 듯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적에 맞서, 자신의 삶에 맞서 싸우는 이의 뒷모습은 어찌 이리도 고독한가?! 누구나 하나뿐인 목숨이 아깝지 않을 리 없지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나라의 위기 앞에 초개같이 그것을 버리고 떨쳐 일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하지. 그런 이순신 장군이 당대에 받았던 소외와 고난이 더욱 후대를 숙연하게 하고 말이야.

엄마가 짧은 여행길에 기차역에서 만난 수많은 아들처럼, 너도 다음 주면 드디어 신병 휴가를 나오겠구나.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많아 엄마에게까지 차례가 올지 모르지만, 너의 스물한 번째 생일을 정성껏 준비하며 기다리련다. 아들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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