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소설가 김별아가 쓰는 엄마의 병영일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력 2016. 11.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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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3사단 서혜준 일병 어머니>



혜준!

온 세상이 고요해진 한밤에 홀로 당직 대기를 서며 무슨 생각을 하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잠든 이들의 꿈길이 편안할 터, 그 생각으로 오늘도 밤을 지키는 모든 아들의 고단함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바랄 뿐이다.

거의 장롱면허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운전병에 지원해 마침내 부대 내의 교육과정을 통과하고 사수로 운행하게 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구나. 당직 대기 인원이 많지 않아 선임 몇몇이 교대하느라 고생하는 걸 보고 어서 합류해 수고를 덜고 싶다고 조바심쳤지. 하나 교육통과가 쉽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는데 참 다행이다. 운전은 편리한 만큼 위험이 따르는 일이니 철저한 교육이 필수겠지. 누군가 이야기한 대로 군대에서의 운전은 무조건 전방 주시를 확실히 하고, 백미러 자주 보고, 서행하는 게 최고이자 최선이란다. 모쪼록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무사고 전역하는 것이 운전병 엄마로서의 소원이야.

밤새 당직 대기를 하면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 엄마에게 너는 순찰도 하고, 위병 사관·당직 부관과 공관 근무나 부대 인근의 수문을 개폐하기 위해 이동하는 병사들도 태워주고, 응급상황에도 대처한다고 대답해 주었지. 그야말로 한밤에 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함께하는구나. 네가 그처럼 많은 일을 맡아 처리한다니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는 엄마의 품 안에서 보호를 받는 어린 아들이었지. 스무 살이 넘어 엄연한 성인이 되었음에도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서 언제나 철이 들려나,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제 몫이나 하려나 걱정이었어. 그런데 입대를 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네 힘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비록 서너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너 자신도 엄마의 생각도 많이 변한 것 같아. 내 아들이 비로소 세상 속에 두 발로 우뚝 선 남자가, 독립체인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엄마도 이제는 아들을 품 안의 자식이 아닌 인격체로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그런데도 야간 순찰을 하다가 야산에서 사슴이 튀어나오면 얼른 길에서 비키라고 전조등을 번쩍거리거나 클러치를 여러 번 밟거나 그래도 안 되면 살그머니 경적을 울린다고 말하는 너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동물원을 거닐던 그때 그대로야. 내 사랑하는 아들, 사슴의 순진한 눈망울만큼이나 순정한 마음으로 네 젊은 날의 한밤을 굳건히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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