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리더의 식탁

‘만두 먹고천하를 잃다’ 민심 잃은 이유를 만두에 비유

입력 2016. 11. 16   17:27
0 댓글

<42> 이자성과 만두


명나라를 무너트린 이자성 농민 전폭적 지지 얻었지만 42일 만에 황제에서 쫓겨나

‘만두 많이 먹어 옥황상제 분노’중 국 한족의 민담으로 전해져 中 지도자들 반면교사로 삼아

 

 

 

명나라 장군 오삼계

 

 

 

 

명나라군의 사령관 오삼계

만리장성은 중국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겠다고 쌓은 성벽이다. 서쪽 끝 가욕관에서 동쪽 끝 산해관(山海關)까지 약 6000㎞에 이른다. 고대 진시황 이전부터 쌓기 시작해 명나라 때 완성됐다. 이렇게 거대한 성벽을 쌓은 명나라지만 북방의 만주족 청나라에 쉽게 무너졌다. 명나라 장군 오삼계(吳三桂)가 청나라에 투항해 만리장성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중국 북방에서 만주족의 청나라가 맹렬한 기세로 세력을 넓히자 명나라 주력부대가 요동에 머물며 대항했다. 하지만 청나라 군대에 밀린 명나라 군대는 결국 만주지역에서 패퇴해 만리장성 동쪽 끝 요새인 산해관으로 들어갔다. 이때 명나라군의 사령관이 오삼계였다.

산해관은 천혜의 요새다. 그래서 화포가 부족하고 기병 위주였던 청나라 군대가 쉽게 돌파하지 못했고, 양쪽 군대는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산해관 전경

이자성, 농민봉기 일으켜 황제 자리 올라

이 무렵인 1644년, 이자성(李自成)이 농민봉기를 일으켰다. 농민군을 주축으로 한 반란군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쳐들어온 이자성은 마침내 자금성을 점령해 명나라를 무너트린 후 순(順)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어떻게 명나라가 정규군도 아닌 오합지졸 농민군에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명나라 정규군 주력이 산해관에서 청나라 군대와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농민 반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이자성은 이렇게 어부지리로 황제 자리에 쉽게 올랐지만 오랫동안 천하를 호령하지는 못했다. 청나라 군대가 투항한 오삼계의 도움을 받아 만리장성을 돌파하고 농민군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자성은 결국 황제가 된 지 불과 42일 만에 자금성에서 쫓겨났다.



이자성 만행에 청나라에 투항한 오삼계

명나라 장군 오삼계는 반란군과 직접 전투를 한 적도 없고 원수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동족인 반란군이 아니라 이민족인 청나라에 투항했을까?

이자성 군대의 만행 때문이었다. 명나라가 망하고 이자성의 반란군이냐 아니면 이민족인 청나라냐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오삼계 역시 이자성 군대에 투항하려 했다. 하지만 반란군은 항복한 관리들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투항한 관리들을 모욕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앞서 이자성 군대에 투항한 그의 부친 역시 반란군에 약탈당한 것은 물론 감금에 고문까지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삼계는 투항을 포기했다.

그러자 이자성은 투항하지 않는 오삼계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산해관을 향해 진격했다. 이때 이자성 군대의 병력이 약 10만 명이었다고 한다.

반면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병력은 비록 정예군이라고는 하지만 3만에 불과했다. 만리장성 밖에서 호시탐탐 성벽을 넘을 기회를 노리는 청나라 군대 역시 약 10만에 이르렀다.

안팎으로 10만 군대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오삼계는 결국 청나라를 선택해 투항했다. 이렇게 천혜의 요새인 산해관 문이 열리자 청나라 군대는 투항한 명군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베이징으로 쳐들어가 자금성을 점령했고, 보병 중심의 농민군인 이자성 군대를 무찌른 후 중국 본토를 장악했다.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이다.





이자성의 몰락은 만두 탓?

농민 봉기 초기에 세금을 줄여주고 토지를 재분배하겠다는 약속으로 농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던 이자성이 왜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을까? 단지 막강한 청나라 군사력을 막을 수 없어서였을까?

청나라에 패하고 200년 넘도록 만주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중국 한족은 이와 관련한 민담을 만들어냈다. 이자성이 쫓겨난 이유가 만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자성은 원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점점 가세가 기울어 어렸을 때는 양을 키웠고 커서는 역참을 지키는 병졸이 됐다. 가난하게 자란 이자성은 평소 만두를 먹어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농민들에게 만두는 일 년에 한 번, 춘절(설)에나 먹는 음식이었다. 자금성을 점령하고 황제가 된 이자성이 만두를 먹어 보고는 그 맛에 반해 밤낮으로 만두를 42차례나 먹었다.

하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화가 났다. 만두는 일 년에 한 번 설날에 먹는 음식인데 황제가 됐다고 분수를 잊고 마구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42년간 황제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데 겨우 42일밖에 황제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담이지만 중국인의 만두 사랑과 이자성이 민심을 잃은 배경이 담겨 있다. 이자성은 농민 봉기라는 초심을 잃고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모든 걸 잃은 것이다.



지도자들 민심 잃지 않으려 노력

농민의 지지를 업고 혁명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이 이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대륙을 장악하기 전, 지도자들은 “만두 먹고 천하를 잃다”라는 말을 수첩에 적어서 다녔다고 한다. 민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