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우리 땅은 우리 무기·우리 손으로 지키겠노라!”

입력 2016. 11. 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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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웨덴 ②


1800년대부터 군수산업 발전시켜 1940년대 폭격기까지 자체 생산

지금은 전투기·잠수함 등도 수출

독자 무기개발 자주국방 의지 ‘활활’

 

 

대포 공장 개조한 육군군사박물관

중세 화포부터 최신 무기까지 빼곡

 

 

 

스웨덴 자국 생산 무기와 군수품으로 무장한 스웨덴군 병사 모습.

 

 

 


스톡홀름 중심부의 스웨덴 육군군사박물관! 첫 전시물은 인간 본성의 야만성을 동물 세계를 통해 인상 깊게 보여준다. 침팬지들의 원초적인 투쟁과정과 인류 전쟁역사를 비교해 가며 ‘부국강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종인 침팬지들의 투쟁 모습. 스웨덴 육군군사박물관 입구에 전시돼 있다.

 

 

 

동물 세계와 비교한 인류의 전쟁역사

육군군사박물관은 수백 년 전의 대포 생산 공장을 개조한 고색창연한 건물이었다. 야외에는 중세시대 화포부터 최신 장갑차까지 다양한 군사장비들이 진열돼 있다. 박물관은 스웨덴 전쟁역사와 ‘왜 인류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는가?’를 동물 세계의 투쟁과정을 제시하며 잘 설명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침팬지들이 동료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진과 발굴된 원시인 집단 유골 사진이 전시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사진들은 인류 전쟁역사를 이렇게 증언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種)이다. 이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자신들의 영역 확장을 위해 절친했던 동료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인류역사도 침팬지 투쟁과정과 너무도 유사하다. 웅덩이 안의 인간 유골들은 약 1만3000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것이다. 주로 돌도끼나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농경사회 정착으로 의식주가 해결된 이후에도 오히려 인간사회의 전쟁 횟수는 많이 늘어났다. 지구상에서 집단적인 살육, 강간, 약탈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은 침팬지와는 달리 국가 간 전쟁 예방을 위한 협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전에 대비해 방독면을 착용한 스웨덴 국민.

 

 

 


영토수호 위한 단호한 안보정책

박물관 3층에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추진했던 스웨덴 중립정책 자료들이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즉각 중립을 선언했고 ‘거국내각’을 구성했다. 1939년 말, 핀란드-소련의 전쟁으로 이 정책은 곧 시험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스웨덴 지원자들이 핀란드군에 합류했고 시민들은 많은 물자를 원조했다. 그러나 영국을 포함한 연합국의 스웨덴 영토를 통한 핀란드 병력지원을 정부는 거절했다. 열강들의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국들이 전쟁에 휩싸이자 전 국민은 자위력 강화에 자발적으로 나섰다. 시민들은 개인차량을 비행장 활주로나 도로 가운데에 주차해 적 항공기나 공수부대 착륙을 거부했고, 트럭공장은 탱크를, 성냥공장은 탄약을 생산했다. 스웨덴은 이 무기를 자주국방에만 쓸 것이라고 대내외에 공포했고 실제로 확고한 의지도 있었다. 한 예로 “1940년 4월, 독일 폭격기들이 영공을 통과하자 대공포 부대는 가차 없이 발포했다. 혼쭐이 난 독일 공군기들은 두 번 다시 스웨덴 영공을 넘보지 못했다.”



스웨덴 방산업체가 생산한 무인정찰 항공기.

 

 


이웃 국가 피난민에게 내민 구호의 손길

1939∼1940년 사이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는 강대국 소련, 독일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 스웨덴은 소련과 전쟁 중인 핀란드의 어린이들을 국내 가정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독일의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피난민들이 스웨덴으로 흘러오자 무제한으로 수용했다. 그 후 나치가 덴마크 유대인을 학살하자 7500여 명의 도피자들을 국내 수용소에서 보호했다. 심지어 국왕 구스타브 5세(Gustav Ⅴ)는 독일과 협상해 발트 해 주변 국가 피난민과 헝가리 유대인들까지 국내로 수송해 오기도 했다.

또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스웨덴 국민은 6·25전쟁이 나자 즉각 의료부대를 보내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특히 전쟁이 끝난 후인 1958년,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가 협력해 서울에 ‘국립중앙의료원’을 건립했다. 이 병원은 선진 의료기술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음하던 수많은 우리나라 환자들을 돌보다가, 1968년 한국 정부가 인수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육군군사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스웨덴산 전차.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마지막 전시관에서는 무기생산 역사 코너가 있었다. 1800년대부터 군수산업을 발전시켜온 스웨덴은 1940년대 폭격기를 자체 생산할 정도로 무기개발에 국가역량을 집중해 왔다. 오늘날 세계 주요 방산품 수출국 중 하나인 스웨덴은 각종 첨단기술이 적용된 그리펜(Gripen) 전투기, 잠수함, 항공정찰장비 등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 한국군이 도입하는 500㎞ 밖의 목표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공대지 미사일 ‘타우루스’도 스웨덴-독일 합작회사 제품이다. 널찍한 전시관에는 스웨덴산 소총·대포부터 장갑차·전차·무인항공기들이 꽉 차 있다. 독자적인 무기개발을 통한 스웨덴의 강렬한 자주국방 의지를 보면서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TIP - 스웨덴 사회보장제도는?

무상의료·완전고용·노후연금


스웨덴의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는 무상의료, 국가에 의한 완전고용, 노후연금, 대학원까지의 교육비 지원 등이다. 평등·인권·행복 추구를 목표로 하는 이 정책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했다. 따라서 개인소득의 51%에 달하는 높은 조세부담과 각종 보조금제도로 이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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