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을 그린 화가들

“파괴는 아름답다”던 작가, 전쟁 경험 후엔 “…”

입력 2016. 11. 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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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지노 세베리니 ‘이상의 가시적 종합 - 전쟁’, ‘작동하는 기갑열차’, ‘작동하는 총’


탈리아 출신 미래주의 화가

군인·기갑열차·총 소재로 전쟁 찬양

기계적 이미지·속도 표현에 주력

1차 대전 참전 동료들 죽음 후 변심

 

 




2016년도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네요. 연초에 계획한 것들을 잘 이루셨는지요? ‘전쟁을 그린 화가들’도 벌써 40회를 맞았습니다. 즉 여러분과 함께 벌써 40명의 작가를 만났다는 것이죠. 우리가 만난 작가들이 전쟁을 어떻게 그렸는지 기억나시나요? 정말 다양한 작품들을 봤지만 대부분은 전쟁의 참상에 주목했죠. 그만큼 전쟁은 아픔과 공포를 주는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특이한 작가에 대해 알아볼까 해요. 전쟁을 찬양한 작가,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1883~1966)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래주의 작가인 지노 세베리니는 1909년 미래주의 선언문이란 것을 발표합니다. 거기에는 세베리니가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죠.

“우리는 전쟁·군국주의·애국주의를, 무정부주의자들의 파괴 행위를,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이념을, 여성경멸을 찬양하겠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말들이죠. 아마 2016년에 이런 선언문이 나온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미래주의 작가들은 전쟁을 ‘세상의 유일한 위생학’이라고 부르며 찬양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유행했던 기계문명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됐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은 기계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기차·비행기 등 동력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를 찬양하기까지 했죠. 세베리니가 쓴 미래주의 선언문의 또 다른 문장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찬란함이 새로운 아름다움, 즉 속도에 의해 더 풍부해졌다고 단언한다. 폭발하듯 숨을 쉬는, 뱀 같은 파이프들로 장식된 경주용 자동차. 포탄 위에 올라탄 듯 으르렁대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Nike von Samothrake)’보다 더 아름답다.”

이쯤 되면 ‘전쟁광인 세베리니는 과연 전쟁터에 뛰어들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부실한 건강상태 때문에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죠. 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세베리니는 군인·기갑열차·총 등을 소재로 미래주의운동을 계속합니다.

이상의 가시적 종합-전쟁, 1914, 캔버스에 유채, 92.7x73㎝.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전쟁은 이전 시대 부정한 것을 청소하는 것”

오늘 소개할 첫 작품 ‘이상의 가시적 종합-전쟁’은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 만든 작품입니다. 세베리니는 당시 과학기술의 발달과 근대화된 문명, 더 나아가 전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프로펠러·굴뚝·전신주 등을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의 활동 무대이자, 고국 이탈리아의 동맹인 프랑스의 국기를 그려 넣었죠. 화면을 분할하고 모티프를 구성하는 방식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파(Cubism)의 영향입니다. 세베리니는 피카소·브라크 등 대표적인 입체주의자의 방식을 하나 더 사용합니다. 바로 회화에 언어를 삽입하는 것이죠. 작품 하단에 쓰인 글자들이 보이시나요? 큰 단어는 ‘최대의 노력’(EFFORT MAXIMUM)이라는 뜻입니다. 중앙 오른쪽에 그려진 프랑스 국기 밑으로는 ‘군 동원령(ORDRE DE MOBILISATION GENERALE)’이란 단어를 적었죠.

미래주의 작가로서의 면모는 ‘작동하는 기갑열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세베리니는 이 작품에 대포와 총이 불을 뿜는 급박한 상황을 담았습니다. 또 속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과 사물의 형상을 다시 점으로 분해했죠. 이 역시 입체주의의 영향입니다.

전쟁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까요? 세베리니는 전쟁을 찬양하는 미래주의적 자세를 유지하며 전쟁과 연관된 모티프에 집중했습니다. 파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 근처 당페르-로슈로(Denfert-Rochereau) 역에서 목격한 군인·무기들은 좋은 소재였죠. 그에게 전쟁은 여전히 이전 시대의 부정한 것들을 청소하는 희망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작동하는 총, 1915, 캔버스에 유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기계들의 소리, 그림에 글씨로 가득 채워

전쟁에 동원된 기계들에 매료된 세베리니는 ‘작동하는 총’이라는 작품도 남깁니다. 기관총이 작동하며 발생하는 소리와 상황에 대한 설명 등을 언어로 표현해 배경에 가득 채웠죠. 그는 이 언어들을 무기에서 나오는 연기 속에 배치해 유기적으로 연결했습니다. 제목에도 ‘작동하는’이란 단어를 사용해 이 ‘살인 기계’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베리니는 자신의 선언문처럼 기계적인 이미지와 속도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했죠. 작품들을 보면 연구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베리니는 전쟁을 말 그대로 인류 최고의 위생학처럼 그렸습니다. 그동안 소개한 1·2차 대전 시기의 작가들을 비롯해 그전에도, 이후로도 누구도 전쟁을 세베리니처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전쟁은 너무나 참혹한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세베리니는 1차 대전 직후 갑자기 미래주의를 포기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쟁을 동경하며 자원입대한 미래주의 동료들이 잇따라 전사했기 때문이죠. 특히 1916년 8월 훈련 중 말에서 떨어져 숨진 조각가 움베르토 보초니, 같은 해 전사한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막상 전쟁을 경험한 뒤 환멸을 느낀 작가들의 이탈로 미래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세베리니의 변심은 전쟁이란 거대한 사건이 주는 후폭풍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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