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유라시아 전사적지를 찾아서

“오! 코리안…피로 맺어진 형제 나라에서 오셨군”

입력 2016. 06.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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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터키 ③


만나는 사람들마다 환영의 인사

이스탄불 신시가지에 군사박물관

지난해부터 6·25전쟁 특별전시회

터키군 활약상 등 각종 자료 가득

육사 생도·학생·시민 관람 줄이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군이 사용한 대형화포. 포탄 한 발 무게가 285kg이었다고 한다.  필자 제공

 

 

 


터키인들은 한국에 많은 호감과 애정을 가진 민족이다. 특히 “칸 카르데시(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말은 오직 한국 사람에게만 한다. 그들은 잿더미 위에서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부러워했고 터키군의 한국파병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인재양성의 산실 오스만제국 사관학교

이스탄불 신시가지에 있는 터키 군사박물관! 이곳은 1800년대 이래 오스만제국 사관학교 부지였다. 전시관 입구에는 넓은 연병장, 웅장한 막사, 사관생도 훈련장면 등을 담은 많은 사진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역사를 움직인 강대국은 그 나라의 청년교육에 국가역량을 우선 집중했다.

터키공화국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 역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바로 이곳 사관학교에서 교육받았다. 고색창연한 옛 건물의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특히 케말이 사용했던 교실은 교관과 생도들의 질의토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하면서 그의 생도 시절 사진과 성적표까지 전시해 두고 있었다.



군사박물관 안에 설치된 ‘6·25전쟁 특별전시회’ 전시관 입구.

 

 

 

6·25전쟁 전시관과 터키군 활동

군사박물관은 터키 민족의 기원으로부터 영토변천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고 있다. 현재 이 박물관은 2015년부터 ‘6·25전쟁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넓은 전시공간에는 1950년대 터키 신문, 전선에서의 터키군 활약상, 피난민과 앙카라 학원 사진 등 풍성한 자료로 꽉 차 있다. 터키 육사 생도들의 단체관람을 포함해 학생·시민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특히 참전용사 귀린뤼(Gurunlu) 씨의 회고담은 당시 한국 실상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1950년 한국은 너무나 비참했다. 한 소녀가 비 내리는 진흙탕에서 혼자 떨어져 울고 있었다. 많은 피난민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와 수원 앙카라 학교에 맡겼다. 우리는 식량과 보급품을 아껴 고아들을 먹이고 입혔다. 이런 아이들이 장성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니 너무나 감격스럽다.”

터키군은 이 학교를 1966년까지 운영하며 700여 명의 고아를 돌보았고 전국에 50여 개의 구호기관을 세웠다.



포로 대신 죽음을 택한 전쟁영웅

6·25전쟁 전시관에는 터키인들이 한국을 ‘피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연이 담긴 자료들이 많았다. 1951년 4월 22일 야간, 한탄강 북방전투에서 전사한 쾨넨치(Koinenchi) 중위가 포병대대에 진내사격을 요청한 사연의 일부다.

“중대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됐다. 결코, 적에게 포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를 그들에게 넘기지 마라. 방어진지 위로 집중 포격을 해다오. 터키군 만세!”

현재 이 장교의 이름을 딴 터키의 ‘쾨넨치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전쟁영웅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전사한 아빠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아들, 터키군의 손을 잡고 활짝 웃는 전쟁고아 사진 등은 당시의 전쟁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에 있는 군인호텔. 군 간부와 예비역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오스만제국 해체

박물관 2층은 오스만제국의 운명을 바꾼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 독립전쟁 전시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오스만의 전쟁 참여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오스만은 1853년 크림전쟁과 1912년 발칸전쟁에서 패하면서 유럽영토의 83%를 잃었다. 술탄 메흐메트 5세는 이 모든 것이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생긴 일이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만에 앙갚음의 기회였고 독일이 강한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다. 술탄에게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철도 건설을 지원하는 등 물량 공세를 폈다. 결국, 오스만제국은 독일과 비밀동맹을 맺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스만은 사력을 다했지만 1918년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됐다.”

1920년 8월 10일, 프랑스 세브르에서 오스만은 아랍지역의 모든 영토를 포기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터키 동남부는 프랑스에, 에게해 섬 대부분은 그리스에 빼앗겼고 터키 서쪽 일부는 5년간 그리스 신탁통치에 맡겨졌다. 이로써 오스만 영토는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반도 일부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술탄의 오판으로 결국 아시아와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만제국은 해체되고 말았다.



최고 시설을 갖춘 이스탄불 군인호텔

이스탄불 신시가지에는 최고급 민간호텔과 터키군 군인호텔이 보스포루스해협을 나란히 내려다보고 있다. 군인호텔은 25층 규모로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지만, 숙박료는 저렴하다. 쾌적하고 넓은 로비에는 많은 군 간부와 예비역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조국수호에 앞장섰던 찬란한 터키군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은 이런 군인복지시설에 거부감이 거의 없는 듯했다. 단지 최근 빈발하는 테러에 대비해 정문과 울타리의 무장경계병이 다소 분위기를 긴장되게 할 뿐이었다.




700여 년 전통 세계 최초 터키 군악대 지금도 활발한 공연

 


 

 

 

 

1299년에 창설된 터키군 군악대는 약 7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군악으로 장병들의 사기를 고양하는 터키군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매주 수요일 오후 군사박물관에서 전통군악대 공연(사진)이 있으며 보스포루스해변 톱카프 궁전에서도 수시로 관광객들을 위한 야외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신중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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