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병재 교수의 군과 영화

지금 공기처럼 느끼는 자유… 호국영령들의 은혜

입력 2016. 06. 0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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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고지전(The Front Line)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장장 3년1개월을 끌었다. 그중 1951년 7월 이후 2년2개월간은 교착 상태였고, 판문점에서는 휴전협상이 진행됐다.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양측은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남북한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했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이 거듭됐다. 고지전(高地戰)이 시작된 것이다.




 

정전 협정 체결 시점에 백마고지 대승

 

대표적인 고지전이 있었던 곳이 백마고지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해발 395m의 ‘395고지’, 이곳을 차지하려는 우리 국군과 중공군의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모습이어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됐다.

1952년 10월 6일에서 10월 15일까지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했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두고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됐으며,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정전회담에서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영화 ‘고지전’은 ‘애록고지’ 쟁탈전 다뤄


 

영화 ‘고지전’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1953년 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애록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우리 국군과 북한 간의 고지(쟁탈)전을 다루고 있다. 19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서로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싸우는 이야기다. 영화는 제목 ‘고지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지전에 집중한다.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

6·25 전쟁의 막바지인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중대장이 전사한다. 중대장 시신에서 발견된 것은 뜻밖에도 아군의 총알. 상부에서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를 동부전선에 급파한다.

신임 중대장과 함께 그곳으로 간 강 중위는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돼있었고, 임시 중대장 신일영 대위(이제훈)는 갓 스무 살이다. 강 중위는 직감적으로 수상함을 느낀다. 이 무렵 인민군의 기습공격으로 애록고지를 북한군에 빼앗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강 중위도 고지 탈환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나 신임 중대장의 무리한 작전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임시 중대장 신 대위와 김 중위는 병력을 후퇴시킨다. 이 과정에서 강 중위는 과거 포항철수 작전 시 악어중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다. 마침내 휴전협정 조인으로 전쟁은 끝나는 듯했지만, 협정이 발효되기까지 남은 12시간 안에 고지를 점령하라는 상부 명령이 내려와 악어 중대는 다시 마지막 전투에 나선다.

‘고지전’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이 호국영령들의 피땀과 눈물로 다져진 것이라고 말한다. 어두운 밤을 틈타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중공군과의 악전고투, 마지막 전투에서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악어중대원들의 모습은 처절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는 민족주의와 남북분단에서 연유된 이념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동족상잔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이념 대립이 아니라 전쟁의 실체와 본질에 충실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우린 빨갱이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랑 싸우고 있다”라는 주인공 김 중위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나라위한 숭고한 희생의 메시지 담아

 

장훈 감독은 “ ‘고지전’ 그 자체를 잘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라 전장(戰場) 영화다. 실제 전쟁터에 들어선 것 같은 생생함, 그저 볼거리로 소비되는 것만이 아닌 그때 그곳의 상황이 관객들에게 색다른 공감을 안겨주는 영화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지전’은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 끝 부분 초긴장 상태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부르는 노래 ‘전선야곡’이 긴 여운을 남긴다. 임시 중대장 역할을 맡은 이제훈과 북한군 장교 류승룡의 연기가 돋보였다. 싸우는 이유를 묻는 강 중위의 질문에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라는 북한군 장교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2016년 6월 지금, 여전히 핵 개발 운운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영화가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채 6·25 전쟁을 전쟁 그 자체로만 다룬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6·25 전쟁의 상흔이 현재진행형이란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같은 반공영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는 메시지는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공기처럼 느끼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6월이면 좋겠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고지전(The Front Line), 2011
감독:장훈/주연:고수,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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