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 전망대 탐방

4월의 눈 내리는 분지 마을 움푹 파인 아픔은 다시 가슴을 에는 듯…

맹수열

입력 2016. 04. 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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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구 을지전망대


산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 마치 화채그릇과 같다고 해 이른바 ‘펀치볼’(Punch Bowl)이라고 불리는 분지 마을이 있다. 정식 지명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마을 북쪽 군사분계선과 맞닿은 해발 1049m 고지에 작은 2층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은 ‘을지전망대’. 민간에 개방된 가장 높은 전망대다.

 

 

 

 

 


비무장지대에 세워진 을지전망대, 북한이 한눈에

을지전망대를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선 지난달 23일 서울은 푸르른 하늘과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펀치볼에 진입하기 위해 돌산령터널을 지나는 순간 난데없는 설경(雪景)이 펼쳐졌다.

“원래 펀치볼 기후가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합니다. 오늘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보통 이곳은 5월까지도 눈이 오는 지역이지요.” 을지전망대를 관리하는 육군12사단에서 기자를 안내하기 위해 현장에 나온 박정호 중위는 이렇게 설명했다.

눈발을 헤치며 오르길 한참. 을지전망대에 도착하자 산 아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펀치볼 분지가, 북쪽으로는 비무장지대가 훤히 보였다. “원래 유엔 정전협정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에 각각 2㎞씩 비무장지대를 둬야 하지만 1970년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1㎞ 가까이 내리면서 우리도 남방한계선을 전방 주요 고지로 배치시켰습니다. 을지전망대가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을지전망대 인근에서 경계근무를 맡고 있는 노민규 중위의 설명이다.

 

 

 



을지전망대를 관리하는 육군12사단 장병들이 이동로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있다.

 

 

 

치열한 대치… 남북 심리전 현장 되기도

을지전망대는 평소 고요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주변에는 남북의 군사대치로 인한 각종 에피소드들이 숨어 있다. 우선 을지전망대는 이곳을 찾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등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최전방 안보교육의 장이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1988년 12월 지어졌다. 가칠봉은 금강산 1만2000봉이 되기 위해 더해진 마지막 7번째 봉우리란 이름을 가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가칠봉 정상에 설치된 수영장은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북한에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1992년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가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북한 지역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우선 해발 1290m인 매봉 정상에는 북한이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태양열 전지판이 있다. 원래는 2개가 설치됐지만 2000년 여름 태풍 볼라벤이 이곳을 덮치면서 1개가 유실됐다고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매봉과 운봉의 능선에 위치한 선녀폭포. 선녀폭포는 북한의 ‘황당한’ 대남 심리전이 벌어졌던 장소다. 1970~1980년대 북한은 우리 장병들을 유혹하기 위해 탁 트인 이곳을 여군들의 목욕터로 만들었다. 선녀 같은 여인들이 목욕을 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선녀폭포’란 지명도 이때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미국 프로농구(NBA)에 진출할 뻔한 리명훈이 북한에서 인기를 끌면서 부대에 보급된 농구골대도 보인다. 을지전망대에서는 북한군 병사들이 농구를 하는 것은 물론, 빨래를 너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노 중위는 “을지전망대는 훈련을 받는 북한군 장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고 설명했다.



을지전망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전망대 한쪽에 마련된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남북 최접경지역 ‘안보 요충지’… 관광객 발길 끊이지 않아

6·25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고 지금도 북한과 맞닿은 안보의 요충지다. 동시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안보관광지기도 하다. 기자가 찾은 날 역시 궂은 날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을지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을지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양구군청에서 파견을 나온 박미나 해설사는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1000~2000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한다”라며 “분단의 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안보의 현장이기 때문에 더욱 발길을 끄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제가 1963년 군에 입대했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 여러분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을지전망대는 처음인데 북한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양평에서 지인들과 함께 을지전망대를 찾았다는 황복주(74) 씨는 망원경으로 북쪽을 한참을 바라본 뒤 이렇게 말했다. 황 씨는 “50년 넘게 분단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라며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장병들에게 “여러분들이 있어 우리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민간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지만 본질적으로 을지전망대는 최접경지역. 이곳을 지키는 것은 12사단 장병들의 몫이다. 특히 북한군의 동향이 육안으로도 확인될 만큼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장병들은 무거운 긴장감을 강한 책임감으로 승화시키며 막중한 경계임무를 완벽히 소화하고 있었다. 노 중위는 “항상 적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물샐틈없는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바로 최전방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마음가짐으로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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