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병재 교수의 군과 영화

하늘 위 두려움은 없다 뜨거운 심장만 있을 뿐

입력 2016. 03. 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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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라파예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일단의 전투기가 갑자기 선회해 높이 솟아오른다.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수직 상승한 비행기들이 이번엔 방향을 틀어 급강하하면서 반대편에서 날던 적기의 후방으로 바짝 붙는다. 순간 당황하는 적기 조종사. 이어 연발 사격하는 전투기. 검은 연기를 뿜으며 추락하는 적기. 공중전(空中戰·air battle)이다.

공중전을 주도하는 전투기는 속력·상승력·선회성(旋回性) 등을 기반으로 하는 기동성이 필수다. 지정된 지점 또는 목표의 상공을 빙빙 도는 공중선회(空中旋回), 수직으로 방향을 바꾸는 수직선회, 비행기의 앞부분 기수를 급히 아래로 기울여 원래와 반대 방향으로 나는 실속반전(失速反轉)등 특수비행 기법을 총동원해 적기 후방에 붙어서 공격하는 것이 관건이다.

넓은 창공을 굉음을 내며 빠르게 나는 날렵한 전투기의 모습이나 종횡무진 곡예하듯 나는 비행기의 역동적인 장면은 시각적인 시원함을 선사한다. ‘움직이는 그림(motion picture)’ 이라는 영화의 본질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액션과 스펙터클을 주 무기로 하는 전쟁영화라고 하더라도 공중전을 그린 영화는 많지 않다.


 

1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 최초의 전투비행단

 



‘라파예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벌어진 프랑스와 독일 간의 공중전을 그린 전쟁영화다. 1917년, 미국은 아직 1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38인의 미국인들은 프랑스군에 자원 입대한다. 이들은 라파예트 장군의 이름을 딴 ‘라파예트 비행단’을 조직해 독일군과 싸웠다. 라파예트(Lafayette)는 프랑스 귀족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 때 초대 미국 대통령 워싱턴과 함께 영국과 싸워 미국 독립에 일조한 프랑스 장군이며 미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라파예트 비행단은 1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 최초의 전투비행단으로, 비행단원들은 젊은이로서 하늘을 날고 싶은 꿈과 자유를 위한 용기로 뭉쳐 있었다. 하지만 6주의 훈련만 받고 곧바로 적 전투기와 싸워야 했기에 출전이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였다. 이 부대원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고작 21일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불사한 비행단의 명예로운 전투는 적군에게 전설과도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전쟁 중 프랑스를 지키면서 수많은 독일 전투기를 격추했고 살아남은 대원들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자 대부분 자국의 항공대로 돌아가 비행사로 활약했다.

 

 

경비행기로 펼치는 현란한 공중전 압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Flyboys’의 타이틀이 뜨면서 시작된다. 프랑스 전역에서 독일과 연합군 간에 역사상 유례없는 공중전이 펼쳐진다. 연합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바다 건너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가업으로 내려오는 목장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미국 청년 롤링스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연합군에 자원 입대, 프랑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출신과 나이, 인종은 다르지만 같은 꿈을 위해 모인 젊은이들과 합류한다. 그들은 자유와 꿈을 위해 명예롭게 하늘을 나는 미국인 최초의 전투비행단 ‘라파예트 비행단’에 편입된다. 롤링스는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전장 생활 와중에 프랑스 여인 루시엔을 만나 사랑을 키우면서 비행단의 에이스로 자리 잡아간다. 그러던 중 독일군은 프랑스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폭탄을 싣고 파리를 향해 다가온다. 롤링스는 홀로 남겨진 루시엔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과 죽을 수도 있는 전투 사이에서 고민하다 비행단에 남기로 한다. 라파예트 비행단은 아직 서툰 비행 솜씨에도 불구하고 독일 공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 용기 있게 출격한다.

영화 초반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중반 이후엔 세계 최초의 공중전이 벌어졌던 1차 대전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위기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면서 360도 회전하고, 위치 바꾸기를 시도하는 등 당시 비행사들의 곡예 같은 현란한 비행이 압권이다. 현대의 최첨단 전투기와는 전혀 다른, 초창기 경비행기 수준의 항공기로 벌이는 재래식 전투여서 오히려 긴장감은 더 높다. 적의 총탄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여인을 구출하는 남자 주인공, 사방이 뻥 뚫려있는 조종석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행사의 비장한 표정, 하늘에선 차별이 없어 좋다는 흑인 비행사의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 

 

외인부대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정예부대로

라파예트 비행단은 프랑스 국적자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외인부대였다.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기에 더 헌신적이고 훨씬 더 전투적이었을 것이다. 1831년에 창설된 실제 프랑스 외인부대는 수많은 격전지에서 살아남은 요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가장 험난한 임무에 투입되곤 했다. 이런 어려운 임무들을 완수해 프랑스군에서 가장 많은 표창을 받은 정예부대로 자리 잡았다.


라파예트(Flyboys, 2006)
감독: 토니 빌/출연: 제임스 프랭코·스콧 하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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