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이 저물어 가던 오늘, 현대시단의 큰 별 김소월이 타계했다. 불과 33세였다. 저조한 작품 활동에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꺾인 삶의 의욕은 끝내 아편을 먹고 자살하게 했다. 그가 남긴 작품엔 전 국민이 애송하는 '진달래꽃'을 비롯해 '찬저녁' '초혼'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등이 있다.
그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산학교 시절 스승 김억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김억은 그의 재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그의 시가 활짝 꽃필 수 있도록 도왔다. 20대에 들어선 1922년부터 그의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잔디' '첫치마' '진달래꽃' '강촌' 등이 이때의 작품들이다. 시집 '진달래꽃'이 출판된 것은 1925년이었다. 그의 유일한 시집이기도 한 이 시집은 한국시단의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이국적인 언어형식들이 풍미하던 당시에 그의 등장은 큰 충격이었다. 토속적인 이미지에 민요풍의 7·5조 리듬의 시는 분명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시들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를 민요시인으로 부르는 이유다. 여기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담아낸 동양적 심상들은 그를 민족시인으로도 불리게 했다.
그의 시에는 생에 대한 깨달음이 녹아 있다. '산유화'나 '달맞이' 등에서 나타난 피고 지는 꽃의 생명 원리는 곧 태어나고 죽는 인생 원리를 통찰하고 있다. 서울 남산에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인근에는 소월길이 있다.
정남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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