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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서독에 광부 첫 파견(1963)

정남철

입력 2015. 12. 2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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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모집에 무려 4만6000여 명이 몰렸다. 92대 1의 경쟁률이었다. 1963년 정부가 독일에 파견키로 한 광부의 모집 경쟁률이었다. 이는 곧 당시 우리 경제상황의 절박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정부가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 정책을 펼치면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자 이번엔 다른 쪽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농촌이 붕괴되면서 실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 여기에 지속적인 경공업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외화부족 현상도 나타났다.



실업자도 줄이고 외화도 벌어야 하는 정부가 선택한 것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이었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방안이 우선 고려됐다.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인들이 힘든 육체 노동을 기피하면서 광부와 간호사 자리가 많이 비었다. 체력 테스트 등을 거쳐 선발된 500명의 광부가 역사적인 첫 파견 길에 오른 것은 그해 오늘이었다. 광부들은 우리 국민 특유의 근면성을 발휘하며 악바리처럼 일했다. 하루 작업량을 본 독일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 달 수입이 160달러로 당시 국내 월급의 몇 배였다.



이들은 수입의 90% 가까이를 국내로 송금했다. 한 푼이 아쉬운 우리나라의 외화 획득에 큰 도움을 주며 경제개발의 한 축이 됐다. 광부 파견은 1977년까지 계속돼 모두 7932명이 독일로 건너갔다. 국내 경제에 큰 기여를 했지만 대부분은 광산 노동 경험이 없던 초보들이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비슷한 기간 간호사는 1만226명이 파견돼 역시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정남철 기자 < gop155@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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