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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떨어지는 베이컨 기름 모으고 모아 폭탄 제조

입력 2015. 12. 1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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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베이컨


기름 1파운드면 1파운드의 폭발물 제조

미국, 2차 대전 때 집집이 베이컨 기름 수집

디즈니 만화영화 ‘미키마우스’ 통해 홍보

 

 

 


 

 

2차 대전 당시 동물성 지방 절약 캠페인 포스터.

 

 

베이컨 기름을 모아 폭발물을 만들자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한 장면.

 

 

 

별미 베이컨의 변신

 잘 구운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도 맛있다. 잘게 썬 베이컨 조각과 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볶음밥은 웬만한 한국 사람은 모두 좋아한다. 밥이나 채소를 베이컨으로 감싼 베이컨 말이는 어렸을 적 별미였고, 휴양지 호텔에서 아침에 먹는 베이컨 구이와 계란 프라이는 작은 사치다.

한국인도 이렇게 베이컨을 좋아하는데 오랜 세월, 세대를 이어가며 베이컨을 먹어 온 서양 사람들은 당연히 더하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베이컨을 넣은 아이스크림, 베이컨 향기를 가미한 술과 비누, 치약까지 등장한 적이 있다. 베이컨 마니아가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미국 사람들은 베이컨을 그만큼 많이 먹는다.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가공한 식품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가공한 식품이다. 돼지 뱃살 혹은 옆구리살을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 후 훈연해 만든다. 바로 우리나라 삼겹살을 만드는 부위다. 그러니 삼겹살 구울 때처럼 베이컨을 구울 때도 기름이 한 바가지는 나온다. 굽다 보면 기름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줄줄 흐른다. 이 기름을 어찌해야 좋을까?

 요즘은 건강에 좋지 않은 기름이니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이나 포화지방산 등등 건강에 관한 관념이 지금과 달랐을 때 미국에서는 베이컨 기름도 재활용했다. 적지 않은 가정에서 베이컨 기름을 샐러드 드레싱 만들 때 쓰거나 옥수수빵을 구울 때 첨가했고 그레이비 소스를 만들 때 이용하기도 했다. 물론 많은 미국 가정에서는 베이컨을 요리한 후 나오는 기름을 그대로 버리기도 했다.



‘기름 한 바가지가 곧 작은 탄약 공장’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42년, 엉뚱한 캠페인이 시작됐다. 가정에서 베이컨을 요리할 때 생기는 기름을 그대로 버리지 말고 모아서 나라에 바치자는 운동이었다. 이를 위해 민간 주도로 조직까지 만들어졌다. 미국 동물성 지방 절약 위원회(The American Fat Salvage Committee)라는 단체다. 베이컨 기름을 모아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는 것이었을까?

 이 위원회가 내건 슬로건이 ‘베이컨으로 폭탄을 만들자(turning bacon into bombs)’였다. ‘기름 한 바가지가 곧 작은 탄약 공장’이라는 표어도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의미 있는 캠페인이었다. 베이컨 기름을 포함한 동물성 기름은 글리세린 제조에 쓰인다. 그리고 글리세린은 폭탄을 비롯한 다양한 폭발물의 원료다. 그러니 가정에서 베이컨을 요리할 때 생기는 기름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폭탄을 제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나라에 헌납하자는 것이었다.

폭탄 원료 글리세린 제조에 동물성기름 사용

전시에 한 방울의 기름일지라도 물자를 절약해 이를 폭탄 제조 원료로 활용하자는 베이컨 기름 모으기 운동의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가정집에서 베이컨 기름을 모아야 얼마나 모은다고 그런 번거롭고 쓸데없는 운동을 펼쳤을까? 그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소비하는 베이컨은 연간 약 20억 파운드 이상이었다. 베이컨 기름 1파운드에는 1파운드의 폭발물을 만드는 데 충분한 글리세린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1파운드의 베이컨을 구울 때 얼마만큼의 기름이 나와 어느 정도를 수집할 수 있었는지는 계량화가 힘들지만, 미국 전역에서 수집하는 베이컨 기름을 모두 합쳐 놓으면 적은 양이 아니다. 어쨌거나 베이컨 기름으로 폭탄을 제조한다는 장난 같은 이야기가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진행됐을까?

위원회는 정부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 만화영화 미키마우스를 통해 적극적으로 전쟁수행을 홍보했다.



캠페인, 전쟁의 경각심 일깨워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베이컨 기름 모으기 만화영화가 1942년 미국 전역에서 방영됐다. 그만큼 적극적이었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베이컨 기름을 모으는 체제도 갖췄다. 집에서 요리할 때 나오는 동물성 기름을 깡통에 담아 정육점이나 지정 상점에 가져가면 여기서 기름을 모아 군수공장으로 보냈다. 이렇게 기름을 가져가면 파운드당 4센트나 배급품을 받을 수 있는 점수 2점을 받았다.

 전국적인 캠페인이 전개됐지만, 과연 효과는 있었을까?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소 다르다. 하지만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 가정에서 약 6억7000만 파운드의 동물성 지방을 절약했다. 미국 내 동물성 기름 생산량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홍보에서는 물량 이상의 분명한 효과를 거뒀다.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가정주부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가정에서 요리하고 남은 베이컨 기름을 모아 폭탄을 만들자는 운동은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처럼 미국처럼 물자가 풍부한 나라도 전쟁 승리를 위해 먹고 남은 기름 한 방울까지 아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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