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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 음식이라 미운 마음 그 이름까지도 ‘미운 털’?

입력 2015. 12. 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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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전쟁 중 바뀐 음식이름


독일 도시 이름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대신 ‘핫도그’

중국이 싫어서 생긴 과일이름 ‘키위’ 등 명칭 변경

 

 



 

 

싫어하는 사람과는 밥도 같이 먹기 싫다. 밥맛 떨어지기 때문이다. 적대적 관계에서는 음식을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동물의 본능이다. 전쟁 중 적개심이 짙어지면 적국의 음식도 싫고 음식 이름까지도 밉다. 그 때문에 적국 음식은 아예 먹지 않거나 이름을 바꿔서 먹었다. 그러다 아예 새로운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도 있다.



독일 적대감으로 핫도그로 이름 변경

 핫도그가 그런 음식이다. 뜨거운 개라는 뜻인 핫도그(hot dog)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유력한 것은 핫도그를 만드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가 독일의 애완견 닥스훈트를 닮아서 도그 소시지라고 부르다가 핫도그가 됐다는 설이다. 핫도그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이다. 하지만 널리 퍼지지는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독일의 도시 이름을 따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은 미국의 적국이 됐다. 하지만 맛있는 프랑크 소시지를 안 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적국인 독일의 도시 이름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싫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빵에다 끼워 먹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의 이름을 바꿔 불렀다.

 하나는 ‘자유의 소시지(liberty sausage)’였고, 또 다른 하나는 핫도그였다. 자유의 소시지는 전쟁이 끝나고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완화되면서 곧 사라졌지만 핫도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원래의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대체했다. 핫도그라는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된 데는 세계 대전 중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한몫을 했다.



햄버거는 ‘자유의 샌드위치’로

 핫도그 비슷한 음식이 또 있다. 햄버거다. 햄버거는 분명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발전시켰고 햄버거라는 이름도 독일 도시 함부르크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보니 역시 1차 대전 때 유탄을 맞았다. 햄버거 역시 ‘자유의 고기(liberty meat)’ ‘자유의 샌드위치’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억지스러웠는지 전쟁이 끝난 후 슬그머니 옛날 이름으로 돌아왔다.



적국 음식이라며 ‘양배추 절임’ 소비 감소

 음식으로까지 퍼지는 지나친 적대감은 일종의 전쟁 히스테리로 해석된다. 그렇다 보니 자국민에게 돌아오는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1차 대전 때 절인 양배추 제조업자들이 정부에 음식 이름을 바꿔 달라고 하소연한다. 이민 사회인 미국에서 독일의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는 이미 독일계가 아닌 많은 미국인들도 즐겨 먹는 채소가 됐다. 그런데 독일에 대한 반감이 퍼지면서 양배추 절임의 소비가 75%나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물자를 아껴 써야 할 전쟁 중에 엄청난 양의 절인 양배추를 내다버려야 할 지경이 됐고, 양배추 농민에서부터 사우어크라우트 제조업자까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유력 신문인 뉴욕 타임스가 1918년 4월 25일 자 기사에서 독일 양배추 절임 사우어 크라우트의 이름이 자유의 양배추 혹은 양배추 피클로 바뀔 것 같다고 보도했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염병에 붙은 독일 명칭도 싫어

적개심이 심하다보니 웃기는 상황도 벌어졌다. 아이들이 걸리는 홍역 비슷한 질병인 풍진은 영어로 독일 홍역(German measles)이다. 그런데 전염병에 붙은 독일이라는 말도 싫었는지 병명을 ‘자유의 홍역’이라고 바꿔 불렀을 정도다.



일본도 영어이름 음식명 교체 시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영국 등의 연합국과 싸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적국 언어인 영어로 된 이름을 한자나 일본어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만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관 주도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카레라이스는 ‘매운 맛 국물 밥’, 사이다는 ‘분출수(噴出水)’ 등으로 바꿔 부르자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들어도 어색하기 때문인지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6·25전쟁으로 이름 바뀐 과일 ‘키위’

 핫도그 외에도 적개심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인도 즐겨 먹는 과일 키위(Kiwi)다. 뉴질랜드에서 중국 과일의 종자를 개량해 세계적으로 퍼트린 것이다. 그래서 예전 키위의 이름은 차이니즈 구스베리(Chinese gooseberry)였다. 6·25전쟁 때 뉴질랜드에서 차이니즈 구스베리를 미국으로 수출하려는데 이름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수입업자들이 미국이 중국과 전쟁 중이니 차이니즈가 들어가는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 냄새를 싹 없애고 새로 지은 이름이 키위였다. 키위는 원래는 뉴질랜드에 사는 새 이름이다.



러시아를 무찌르자는 의미인 ‘정로환’

 음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파는 지사제 중에 정로환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 제약회사에서 처음 개발한 제품인데 원래 이름은 정벌할 정(征)과 러시아의 한자 이름 로(露)를 따온 정로환(征露丸)이었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를 무찌르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약 이름을 정복할 정(征)에서 바를 정(正)자로 살짝 바꿨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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