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정성엽박사의 군가이야기

국가 위기, 노래로 ‘국민 결집’ 1931년 전후 400여 곡 집중 제작

입력 2015. 12. 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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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주변국들의 군가(2) - 중국


항일전 나선 장병 위해 대량 제작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들 부르는

노래도 대부분 이 시절 제작·발표

 

 


 

 

 

 중국은 우리나라에 어떠한 존재인가?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나라다. 육지에서 국경을 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함께 항일전선에 있었다. 불과 60여 년 전에는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40여 년간 교류가 없었으나 1992년 8월 국교를 수립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역 대상 1위로 우리 경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전 세계 국가 중 군사력 2위다. 아시아의 패권국가다. 동맹관계가 아니라면 주변국의 강력한 군사력은 직접적 위협 요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

 

 

 2009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요일이라 한가했다. 전날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2시에 귀국하는 여정이어서 여유가 있었다. 오전 10시경 TV를 틀었더니 중국군 합창단 연주회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전날 베이징에서 있었던 연주회 실황이었다. 중국군 군가가 오케스트라 반주로 힘차게 연주되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려니 했지만 굴기의 중국을 보는 것 같아 놀라웠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군가로 표출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로운 중국도 없다’는 군가였다.



 항일전쟁 시기

 중국 군가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군가는 국가가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난국에 처했을 때 국민을 결집하는 데 그 빛을 발한다. 중국의 군가 역시 1931년을 전후해 발달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동북아에서 기득권을 장악한 일본은 1910년 한반도를 강제로 복속시켰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중국 진출을 노렸다. 만주지역에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힘겨루기로 1931년 일본이 ‘완바오 산 사건’과 ‘만주사변’을 일으킴으로써 중국과 일본 간 15년 전쟁이 시작됐다. 1932년 ‘상하이사변’에 이어 1937년에는 ‘난징대학살’이 일어났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귀결돼 1945년 종전됐으나 1949년까지 국공내전이 이어졌다. 중국군은 다시 6·25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중국의 전쟁은 1953년까지 지속됐다. 그러므로 중국군의 군가는 1931년 무렵 항일전선에 나선 장병들을 위해 대량으로 제작되기 시작해 20여 년간 집중적으로 제작, 발표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 인민해방군들이 즐겨 부르는 군가도 대부분 이 시절에 제작된 군가다. 대략 400곡이 넘는다.




 ‘의용군 진행곡’

 1935년 ‘풍운아녀’라는 영화 주제가로 사용됐던 ‘의용군 진행곡’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대중적 관심을 받으면서 영화 속에서의 군가가 아닌 정식 군가로 활용되다가 1949년 국가(國歌)가 됐다. 작곡자인 녜얼(?耳)은 이 밖에도 1934년에 작곡한 ‘대로가(大路歌)’, ‘개로선봉(開路先鋒)’ 등 여러 편의 군가를 작곡했다. 두 곡 모두 4분의 2박자로 빠른 선율의 힘이 느껴지는 곡이다. 그 밖에 많은 군가를 작곡한 자로는 ‘우정’, ‘진군가’ 등 40여 곡의 군가를 작곡한 ‘리용페이’와 ‘군중몽(軍衆夢)’, ‘격절하감회(格節河感懷)’ 등 10여 곡을 작곡한 ‘리웨셍페이’ 등이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말해주는 듯 군가 중에는 ‘소련은 우리의 좋은 친구다’라는 곡도 있다. 그러나 출처를 구분하지 않고 일본군 군가를 노랫말만 바꾸어서 불렀던 곡도 있었다. 1938년 중국 동북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군대에서 불린 군가 중에는 ‘중한민족연합항일가(中韓民族聯合抗日歌)’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은 1900년에 발표된 일본 해군 군가인 ‘군함행진곡’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와서 가사만 바꾼 곡이다. 원래 4분의 2박자를 4분의 4박자로 바꾸었다. 4절까지 있다.




 ‘인민해방군가’

 2012년 1월 KBS-TV 시사프로그램인 ‘KBS스페셜’에서는 북한의 ‘정율성’이란 작곡가를 조명했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에는 ‘정율성 거리’가 조성돼 있다. 정율성은 누구인가?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조선족이다. 광주 태생으로 19세에 중국으로 가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주의 계열인 의열단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상하이와 연안에서 음악을 배워 ‘중국인민해방군가’, ‘연안송’, ‘모택동 서사곡’ 등을 작곡했다. 그가 지은 ‘중국인민해방군가’는 1990년 베이징 아세안 게임에서 첫 프로그램으로 연주됐다. 하얼빈에도 ‘정율성 기념관’이 있고 우리나라 광주광역시에도 ‘전시관’이 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중국인민해방군가’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군가를 우리 국민이 자유롭게 들어볼 수 있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은 어디에도 없다. 독립기념관에서도 독립군가를 들어볼 수 없다. 우리 군의 군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실례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군가의 가치와 그 효용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

정성엽 정책학 박사·
한남대 한국군가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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