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응답하라 2015 병영생활관 탐방

여성스럽다고? 10분만에 녹다운... GOP 맞춤 운동이네

맹수열

입력 2015. 12. 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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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25사단 상승대대


  “원~ 앤 투~ 앤 스리~ 앤 포~ 앤. 그랑 플리에! 고개 위로 들고 전방 주시하세요. 왼발~ 원~ 앤 투~ 앤….”

 ‘11월의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18일 육군25사단 상승대대 후방 CP 면회실. 우아한 클래식 음악에 맞춰 장병들의 스트레칭이 한창이었다. 한쪽에서는 2명의 강사가 연신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장병들의 몸풀기를 돕고 있었다. 더 낯선 장면은 장병들이 몸을 푸는 데 사용하고 있는 철제 바(Bar). 개별 풍경을 조합하고 약간의 시간을 들여 기억을 더듬고서야 무릎을 쳤다. “아! 발레 수업 중이구나!”

 발레와 군인.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더구나 이곳은 최전방 GOP. 고되고 거친 일상을 살아가는 장병들이 ‘우아한 여성성’의 상징과 같은 발레를 배우고 있는 모습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발레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라고요? 그건 편견입니다. 직접 배워보시면 다를 겁니다.” 기자를 안내한 25사단 관계자는 발레슈즈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아랫배가 두둑하게 나온 30대 중반의 몸을 이끌고 저 날렵한 동작을 따라하라고?” 잠시 망설였지만 ‘큰 결심’(?)을 내렸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보죠.”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발레, 만만치 않네”

 발레슈즈의 끈을 조인 뒤 어정쩡한 자세로 발레 바 앞에 섰다. 이미 장병들은 강사의 지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발레 동작을 하고 있었다. 생소한 발레 용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앞 사람을 보며 손발을 휘적거리기를 10여 분.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저 제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라는 생각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일상에 절어있던 근육은 살려달라며 요동을 쳤고 조금만 몸을 뒤틀어도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뒤늦게 몰려왔다.

 하지만 발레 바에 매달려 악전고투를 하는 이는 기자뿐이었다. 장병들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능수능란하게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모양새는 마치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익혀온 발레리노처럼 보였다. 이미 녹초가 된 기자와 달리 스트레칭을 마친 장병들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실제 발레단원과 같은 몸동작을 선보였다.

 “처음 치고는 잘하신 겁니다. 장병들은 벌써 7개월째 발레를 배운 사람들이거든요.” 장병들을 지도하는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박상철 씨의 격려가 그나마 위로가 됐다. 그런데 잠깐. 발레를 배운 지 7개월째? 매일 경계근무를 서기도 벅찬 장병들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발레를 배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강사가 무려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라니. 자초지종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절대 힘들어서가 아니다)에 체험을 멈추고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우리는 17명의 정예 발레리노

 박씨가 말한 것처럼 상승대대 장병들은 지난 5월부터 국립발레단에서 나온 정식 강사로부터 발레 수업을 받고 있었다. 육군본부가 올해 병영문화예술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국립발레단과 함께 진행하는 ‘발레교실’에 대대가 선정된 것이다. 처음에는 발레에 대한 호기심으로 50여 명이 신청했지만 GOP 부대의 특성과 맞물려 포기한 이들을 제외하고 지금은 17명의 ‘정예 발레리노’만 남았다고 한다. 이들은 일주일 중 GOP의 유일한 휴식시간인 ‘소초 재충전의 날’을 발레를 배우는 데 투자하고 있다. 근무 순서까지 바꿔가며 트럭을 타고 후방 CP로 내려올 정도로 열성적이라고 한다.

 GOP와 발레, 참 어색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왜 하필 GOP 장병들이 발레교실 학생으로 당첨됐을까? 허태선(중령) 대대장의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적과 얼굴을 마주하는 GOP 부대는 삭막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병들 역시 심적으로 굳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면서 잠시라도 웃고 즐기며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막상 해보니 발레는 상당히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더군요. 근육 강화와 유연성, 자세교정에 그만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정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GOP 장병들에게 딱 맞는 운동이 바로 발레였습니다.”

 장병들은 박씨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이향조 씨 등 3명의 강사로부터 발레의 기본을 착실히 배워나갔다. 지난 7월부터는 사단의 장병종합예술제에서 발표할 공연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 발레의 우아함과 군인의 패기가 어우러진 안무는 박씨가 직접 해줬다고 한다. 박씨는 “대부분 처음에는 어색한 몸동작이었지만 이제 몇 명은 발레 전공을 추천하고 싶을 만큼 실력들이 늘었다”고 칭찬했다.

 




“군 생활의 활력소인 발레,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장병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들은 “발레를 통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배우면 배울수록 발레가 재밌다”는 박영식 상병은 “이제 매주 발레를 배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웃어보였다. 이경준 상병은 “여성스러운 무용이라는 발레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며 “소초에 올라가서도 틈틈이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사님들의 열정에 매료됐다”는 장병도 있었다.

 국립발레단의 정식 수업은 지난달 25일 마무리됐다. 하지만 발레에 매료된 장병들은 계속 발레를 배우고 싶다며 입을 모으는 상황. 그 때문에 사단은 국립발레단에 연장교육을 요청했고 국립발레단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오는 17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 동안 추가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다시 한 번 발레마스터를 만나게 된 장병들은 오는 24일 ‘장병종합예술제’에서 그동안 배운 발레 실력을 마음껏 뽐낼 예정이다.

 군에서 만난 발레. 장병들은 이제 발레를 통해 군 생활의 새로운 활력소를 찾게 됐다. 발레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오늘 배운 동작을 복기하는 장병들 사이로 정조혁 상병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발레가 여성스러운 무용이라고 생각해 배우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언제 발레를 배워볼 수 있겠습니까? 군에서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인터뷰- 박상철 발레마스터

 

“ 발레수준은 유치원생 배우는 열정만은 프로”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무용수들인 국립발레단원들이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지도하는 역할. 운동으로 치자면 국가대표팀 코치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단인 국립발레단에서 발레마스터(남)와 발레미스트리스(여)는 박상철 씨 등 4명밖에 없다.

 이런 그가 최전방 GOP를 지키고 있는 육군25사단 상승대대 장병들을 위해 매주 먼 길을 찾아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간간이 발레교실 수업을 나가고 있지만 군인들은 처음”이라는 박씨는 “진짜 발레무용수들에 비하면 ‘흉내’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아주 훌륭하다”고 말했다.

 처음 장병들과 만났을 때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박씨는 “‘매일 피곤한 일상을 보내는 장병들이 과연 수업을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며 “사실 (장병들이)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어색해보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박씨는 “생소한 발레를 배우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장병들의 표정은 늘 밝았다”며 “배우는 이들의 의욕이 느껴지는 만큼 열정적으로 가르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병들이 배운 내용을 “유치원 수준의 기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설프지만 필요한 동작, 발레무용수들이 실제로 하는 동작은 다 배웠다”며 “몇몇은 발레를 전공해도 될 정도”라고 칭찬했다.

 박씨는 “사실 전공자가 아닌 장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발레를 이해하고 소양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매주 발레를 배우는 2시간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라고 했다. “그동안 고생한 장병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는 그는 “장병들을 위해 국립발레단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꼭 한번 공연에 초청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알림>

 

2014년 1월 3일 공군 17전투비행단 시설대대 5생활관을 시작으로 장병 여러분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담아온 ‘응답하라 병영생활관 탐방’이 이번 회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다가오는 2016년에는 보다 새로운 콘텐츠가 국방일보 주말판 12~13면을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입니다. 비록 지금은 ‘응답하라 병영생활관 탐방’의 막이 내리지만 더 새로운 형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들고 언젠가 여러분의 곁을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응답하라 병영생활관 탐방’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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