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팝콘
日 진주만 기습·필리핀 점령으로 美 설탕 수입 급감
극장가 사탕·과자·콜라 못 팔자 저렴한 팝콘이 대체
영화 볼 때는 팝콘을 먹어야 제맛이다. 안 먹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그래도 팝콘 없이 보는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극장에서는 왜 팝콘을 먹게 됐을까?
영화관에서 팝콘 먹는데 무슨 이유가 따로 있을까 싶기는 하다. 팝콘이 맛있으니까 사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굳은 습관일 수도 있다. 혹은 극장에서 팝콘만 파니까 할 수 없이 사 먹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왜 하필 영화관에서는 팝콘만 파느냐는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길가 돌멩이도 거기까지 굴러 온 데는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고 한다. 영화 볼 때 팝콘을 먹게 된 것 역시 이유와 배경이 있다.
1920년대 팝콘은 영화관 출입금지
팝콘과 영화는 모두 미국에서 비롯된 문화다. 미국에서 영화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1920년대 무성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이 영화관을 찾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화는 먹으면서 봐야 재미있다. 이 무렵의 영화 관객 역시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봤다. 하지만 팝콘을 갖고 온 사람만큼은 입장을 막았다. 영화관을 더럽힌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하나, 팝콘은 싸구려 간식이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엿장수들이 갖고 다니며 판 강냉이 정도로 값싼 취급을 받았다. 그런 만큼 카펫 깔린 영화관에 관객이 팝콘을 가지고 들어오면 영화관 주인들이 질색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팝콘은 미국에서 그렇게 대중적인 간식이 아니었다. 팝콘은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의 식품이었다. 인디언들은 부족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팝콘을 튀겨 양식으로 삼았다. 유럽인이 팝콘을 처음 본 것도 최초의 추수감사절 무렵이다. 추수감사 만찬에 참석한 인디언 추장의 동생이 사슴가죽 가방에 팝콘을 가득 담아와 선물한 것이 최초였다.
군것질이 아닌 아침 대용 식사
이후 북미 원주민 이외에 각지에서 이민 온 미국인들도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다만, 18세기 무렵의 미국인들은 팝콘을 군것질이 아닌 식사로 먹었다. 현대인들이 아침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의 전신이 팝콘이었다. 콘플레이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팝콘을 우유나 크림과 함께 아침 대신으로 먹었다. 가정주부가 식사 준비하는 것처럼 냄비에 옥수수를 넣고 일일이 튀겨야 했던 팝콘이 대중적으로 퍼지게 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다. 1885년 찰스 크레터라는 제과점 주인이 팝콘 튀기는 장치를 발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크레터는 처음에 땅콩 굽는 기계를 구입했는데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땅콩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자 이것저것 손을 보다 버터로 양념한 팝콘을 튀기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이후 19세기 말부터 팝콘이 널리 퍼지게 된다. 하지만 팝콘은 여전히 극장 주인들이 영화관에 가져오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싸구려 식품이었다.
1929년 대공황으로 팝콘산업 호황
팝콘이 대중적인 간식이 된 또 다른 계기는 1929년의 대공황이다. 실업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진 사람들이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팝콘이었다. 그 때문에 너도나도 팝콘을 사 먹었고 대공황으로 다른 산업은 불황에 허덕였지만, 팝콘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영화관에 팝콘을 갖고 들어가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팝콘을 못 먹게 하는 영화관은 문을 닫았을 정도다.
하지만 팝콘이 영화관을 완전히 점령하게 된 계기는 약 10년 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엉뚱하지만, 설탕 때문이었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에 이어 이듬해 상반기 필리핀을 완전히 점령했다. 미국의 주요 설탕 수입국이었던 필리핀으로부터 설탕 수입이 완전히 끊겼다. 또 다른 설탕 공급 기지였던 하와이에도 문제가 생겼다. 태평양전쟁으로 화물선의 절반 이상이 군용으로 징발됐고 노동력도 부족해지면서 하와이에서 공급되는 설탕도 급감했다. 미국 본토로 들어오는 설탕 공급량이 전쟁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설탕은 공업용으로 최우선 공급됐고, 그다음이 군인, 나머지가 민간인에게 배급됐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최초로 배급을 실시한 품목이 바로 설탕이었다.
설탕 배급문제로 사탕 대신 팝콘이 유행
설탕 배급은 엉뚱하게 팝콘산업의 호황을 몰고 왔다. 영화관에서 팝콘의 강력한 경쟁자는 사탕이나 초콜릿·과자, 달콤한 탄산음료인 콜라 등이었다. 이들은 저렴한 팝콘 값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설탕이 배급제로 바뀌면서 군수용을 제외한 모든 과자와 초콜릿, 청량음료의 생산이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껌까지도 생산을 중단했을 정도다.
영화관에서 이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팝콘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전쟁의 고통을 달랠 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팝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영화는 팝콘을 먹으며 보는 것으로 문화가 바뀌었다. 그리고 전후 미국 문화가 세계로 퍼지면서 팝콘은 영화 관람에 필수 아이템이 됐다. 팝콘 산업에는 전쟁이 오히려 기회가 된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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