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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 대장 중 합참의장 1위…육·해·공군 참모총장 순

이영선 기사입력 2015. 09. 20   16:47

1·3야전군 및 2작전사령관과 연합사 부사령관은 빠른 진급일자 순

박정희 대통령, 연합사령관 급 높이려 부사령관 한국군 대장 임명

군 최초 대장은 백선엽 장군…해군 김영관·공군 김성룡 총장 1호

 

16일 청와대에서는 6명의 4성 장군들의 보직 및 진급 신고가 있었습니다. 곧이어 신임 육군1·3야전군 및 2작전사 사령관이 취임과 함께 공식 임무수행에 돌입했죠. 4성 장군, 대장은 군 계급 중 최고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책임과 임무가 막중하며 진급하기도 어렵다는 자리입니다.

 

 

 

 

 현재 국군의 4성 장군은 모두 8명입니다.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육군1·3야전군 및 2작전사 사령관 그리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면 모두 4성 장군인 이들의 의전 서열은 어떻게 정리될까요? 2008년 육군본부가 발간한 ‘의전업무 실무’에 의하면 현역 군인으로는 합참의장이 의전 서열 1위가 됩니다. 그리고 육군, 해군, 공군 참모총장이 뒤를 잇습니다. 육·해·공 각군 참모총장의 경우 계급이나 부임 일자에 관계없이 육·해·공군 참모총장 순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뒤를 이어 나머지 대장들, 즉 육군의 1·3야전군 및 2작전사 사령관과 연합사 부사령관의 경우는 진급일자 순서에 따릅니다. 누가 먼저 진급했느냐 여부가 의전 서열을 결정하는 것이죠. 만약 진급일이 같다면 전(前) 계급의 진급일을 고려합니다.

 

연합사 부사령관은 한미연합군 지상군구성군 사령관 겸임

 8명의 4성 장군들을 군별로 구분하면 육군이 5명으로 가장 많고 해·공군이 각각 1명씩입니다. 합참의장의 경우 군별에 상관없이 임명될 수 있습니다. 최윤희 38대 합참의장이 바로 사상 첫 해군 출신이었죠. 공군 출신으로는 25대 이양호 대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육군이 5명인 이유는 연합사 부사령관을 육군이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합사 부사령관은 한미연합군 지상군구성군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타군에서 임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군에 대해 나름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연합사 부사령관의 계급이 연합사령관과 같은 4성 장군이라는 점에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령관은 부사령관보다 계급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는 1970년대 급박하게 돌아가던 정세와 한미연합사 창설 과정과 관계가 깊습니다.

당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상황에서 유엔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대체하기 위해 1978년 창설된 것이 바로 한미연합사입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을 총괄하는 연합사령관의 ‘급’수를 높이기 위해 4성 장군 부사령관을 임명했습니다. 미군이 맡는 연합사령관에 4성 장군 최소한 한국군이 맡는 연합사 부사령관보다 낮은 계급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것이죠. 이는 계급이 높을수록 미 본국에 대한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입니다. 이 같은 조치로 1978년 창설 후 계속해서 미국은 연합사령관에 4성 장군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이재전(예비역 육군 중장)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2003년 국방일보에서 연재한 시리즈 ‘온고지신’에서 그 연유를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

 

백선엽 장군 만 32세에 육군 대장

 어느 길이나 과정 없이 나오는 결과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4성 장군들도 누군가 처음으로 그 길을 열어 놨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 4성 장군은 누구일까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입니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1월 한국군 최초로 별 넷을 달았습니다. 1946년 국방경비대로 출범한 뒤 1948년에 창군한 우리 국군이 그 5년 만에 첫 4성 장군을 배출한 것이죠. 그때 백선엽 장군의 나이가 만 32세였습니다. 3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지 불과 6개월여 만입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서 대장으로 임명되던 그날을 1월 31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건군 초기였다는 점과 6·25전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우리 군으로서는 기억해야 할 날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해군의 첫 4성 장군은 육군의 최초 4성 장군 탄생 후 13년 후인 1966년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8대 김영관(1925~) 총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김영관 총장은 취임 후 ‘충무공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방패 되자’라는 복무지침을 바탕으로 해군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취임 이듬해인 1967년 구축함(DD) 고속수송함(APD) 3척을 도입해 공창(현 정비창) 기술진을 동원해 재취역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대간첩작전 및 해안방어를 전담하는 제6전단을 창설했습니다. 또한 도서와 해안에 많은 전탐기지를 설치하는 등 해군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한 백선엽 장군의 대장 임명장.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서 발췌.

 

 공군의 4성 장군은 해군 대장 탄생 3년 후인 1969년 1월 1일 나왔습니다. 10대 참모총장인 김성룡(1925~2002) 총장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김성룡 총장은 1968년 8월 1일 중장에서 총장으로 취임해 재임 기간 중인 그 이듬해 1월 1일 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이는 총장의 직위 계급이 그때 중장에서 대장으로 변경됐기 때문입니다. 김성룡 총장은 6·25전쟁 당시 F-51D 무스탕 전투기 인수 요원 10명에 포함돼 1950년 7월 2일 일본 이다즈케 미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를 몰고 대한해협을 건너와 정전 때까지 전장에 모두 85회 출격했던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총장 재임 기간 중에는 91기지건설중대를 창설하고 공군기술교육단에 간부학교를 창설해 장기복무 기술하사관 확보에 노력하는 등 공군력 강화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한편 지금은 4성 장군이 존재하지 않는 해병대에도 예전엔 대장이 있었습니다. 1966년 7월 1일 7대 사령관(중장)으로 취임한 강기천 사령관은 69년 1월 1일부로 대장으로 진급했고 정광호(8대) 이병문(9대) 사령관도 대장으로 예편했습니다. 이후 해병대사령관의 직위 계급은 해군과의 통폐합 과정과 1987년 11월 1일 사령부 재창설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3성 장군이 됐습니다. 하지만 현재 의전 서열에서는 각군 3성 장군 중 최고 서열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영선 기자 < vs11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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