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복70주년 60만 장병들과 나누고 싶은 우리 민족사 이야기

조상을 부정하고 민족을 폄하하는 교육은 ‘이제 그만’

입력 2015. 08. 12   15:02
0 댓글

<7> 한국 고대사, 무엇을 바꿔 써야 하나?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 중 하나는 시민의식의 확립이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대·식민사학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민족의 뿌리를 모르면 자아인식과 정체성 확립이 곤란하며, 이는 민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패배주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교육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식민사학을 극복하지 못한 채 조상을 부정하고 민족을 폄하하는 교육을 지속한다면 “조선민이 옛 조상의 영광을 회복하는 데 100년의 세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던 아베 노부유키(9대 조선총독)의 악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동조하면서 그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어찌해야 하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한국 고대사의 본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 이는 민족 역사의 기원을 밝혀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자 남북한 간 역사인식의 이질화를 극복하고 국제경쟁력의 모태를 강화하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 고대사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고대조선 역사에 대한 인식, 둘째는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에 대한 해석, 셋째는 기자국과 위만국,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에 대한 해석이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면 한국 고대사 체계 해석상의 갈등은 거의 해소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다. 인류문명 발전과정에서 보면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은 국가사회단계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만리장성 북쪽에서 발견된 세계 4대 문명과 비슷하거나 이른 시기의 문명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요하문명은 고대조선 이전부터 고대조선 앞뒤 시기까지 우리 민족의 활동과 유관한 유적이라는 차원에서 고고학계의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고대조선 역사가 허구의 역사로 부정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모호한 국사교과서의 설명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녀에게 토라(Torah) 공부를 시킴으로써 어머니의 품속에서부터 확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키워나가는 교육과 비교된다.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시기는 요하문명과 일부 국내에서 밝혀지고 있는 고고학 발굴 결과에 따라 서기전 24세기까지 올려 써야 한다. 서기전 15세기경으로 보는 내용들이 수정돼야 하는 이유다.

기자와 위만은 중국인들인데 우리 민족의 역사가 마치 이들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설명하는 역사학자와 교과서의 모호한 설명은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고 한사군을 평양에 위치시킬 때 가능한 이야기로, 이는 철저한 조선사편수회 시각의 추종일 뿐이다. 한국 고대사 복원이 절실한 이유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