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칭기즈칸 따라 2500Km

감사와 사랑…그리고 아쉬움 굿.바.이. 햇살이

입력 2015. 06. 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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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잊지 말자, 구름 위에는 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횡단을 시작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 날씨까지 좋지 않아

그때 깨달은 사실 한 가지

구름 위에는 항상 ‘햇살’이 존재해

난 세상 비추는 해가 될 것이다

 

 


 

 

 

 200㎞를 남겨 두고 햇살이와 이별

 나담부르에 가서 말약과 필요한 용품을 사고 기름을 넣었다. 기름을 넣으며 록따 형님이 말을 팔려고 흥정했다. 햇살이를 40만 투그릭이면 사겠다고 했다.

 ‘그럼 그렇게 해야지.’ 더 이상 햇살이와 함께 가는 것은 녀석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이건 완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경쟁자를 쓰러뜨리고 이기는 게임도 아니다. 우리와 함께 달려준 것만으로도 이미 햇살이는 우리의 최고 동반자였고 팀원이었다. 이제는 햇살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햇살이를 초원으로, 그러니까 몽골 사람에게로 보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햇살이를 마지막으로 한번 껴안아주고 말을 산 몽골인과 악수를 나누고 듬직이를 타고 출발했다. 헤어짐이라는 것은 슬픈 게 절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그 안에서 감사함과 사랑만을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달리게 된 듬직이가 갑자기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녀석은 과연 햇살이가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제 오늘까지 나흘만 달리면 모든 것은 끝난다.

 

 


 

 

 어둠이 알려 준 깨달음

 형님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5마일 정도 미리 가서 텐트를 쳐 놓고 차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했다. 어둠이 순식간에 내려왔다.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암흑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순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려운 감정이 느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나 안경 위에 쓴 고글이 있어서 다행히 시야는 확보됐다. 하지만 나의 감정은 계속 흔들린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어둠은 나쁜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둠은 두렵고 무섭고 외로운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그 인식, 즉 내 생각이 내 머리에서 감정을 불러왔다. 모든 상태는 그대로인데 그 상태에 대한 주관적인 나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어둠에 적응되는 순간! 그 두려움이 생각에서 왔고 모든 상태는 그저 감정과 관계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깨달으니 두려움은 사라져 버렸다. 두려움과 마주한 그 순간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갔다. 감정과 생각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없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은 무엇을 마주했을 때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내 사고방식에 갇힌 생각이 감정으로 변화된 결과임을 깨달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감정의 변화를 덜 겪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만 자꾸 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감정의 변화를 계속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질 것이고 감정의 변화를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야간에 걸으며 좋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환한 불빛이 나를 비췄다. 순간 모든 것이 내 가슴속에서 사라졌다. 불빛과 함께 모든 근심이 사라진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걱정하는 어떤 순간에 빛이 결국 내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허상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불빛 때문에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가볍게 내가 흔들리는 존재라는 뜻이 아닌가.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

 어떤 것에도 기대지 말자. 나 혼자 있을 때 바로 서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조건이 걸리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중간에 뭔가가 변경될 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한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상황은 변화무쌍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더 큰 확신과 큰 믿음을 갖고 나가야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자. 하지만 항상 마음속의 빛이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우리 인생은 그렇게 두려울 것이 없다. 설령 빛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더 두려워할 것은 없다. 지구가 멈추지 않는 한 새벽 6시면 해가 뜨기 마련이니까.

 처음 횡단을 시작했을 때,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몸도 지치고, 말도 컨트롤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씨조차 좋지 않아 해가 구름에 가려진 날들이 연속됐다. 그런데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구름 위에는 항상 햇살이 존재한다는 것.

 구름이 지나가면 해가 반드시 나를 비춘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당장의 구름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구름이 지나다닌다. 구름을 보지 말고, 항상 그 위에 해를 보고 나아가자. 구름은 지나가는, 흐르는 존재일 뿐이고,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존재는 바로 해다. 해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설령 밤이 돼도 해는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해가 될 것이다. 비로소 알았다. 세상을 비추는 존재가 되자.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세상을 항상 비추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칠흑 속에서 결국 5마일을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형님이 저 멀리서 자동차로 나에게 다가와 빛을 비춰주었고 1㎞만 더 가면 된다고 말했다. ‘정말 잘 달려 왔구나.’ 1㎞를 천천히 가니 완전한 어둠 속에서 우리 텐트의 불빛이 보였고 그렇게 오늘 하루 일정이 끝났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는 알고 가야 되지 않을까. 말도 이젠 너무 많이 달렸는지 지친 상태지만,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본다. 이틀 후 얼기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끌고 가고 싶다. 지금 이대로만 간다면 분명 모레 도착하겠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사흘 뒤, 얼기에 도착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그날이 기대된다. 끝이 나는 그날의 기분을 느낄 날도 머지않았다!

청년모험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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