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시와 가요로 본 한국사100년

전 재산으로 학교 세운 민족교육자

입력 2015. 06. 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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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열전 <49> 한말의 여성 선각자 최송설당


누명 쓰고 몰락한 가문 명예회복 노력

엄상궁과 인연 궁 입궐 영친왕 보모돼

근검절약 거금 모아 활발한 사회활동 

한용운 조언 32만 원으로 김천고보 설립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의 본관은 화순(和順)이며, 경북 김천시 문당동에서 아버지 최창환(崔昌煥·1827~1886)과 어머니 정옥경(鄭玉瓊) 사이에서 세 딸 중 장녀로 태어났다.

 김천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1811년 평안도에서 터진 홍경래 난이다. 증조부 최봉관(崔鳳寬)은 이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최봉관의 외가 강릉 유씨가 오히려 난군에 가담하고, 최봉관 자신 또한 평안도 선천군이 반군에 의해 함락될 때 이에 항전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옥사했다.

 맏아들 최상문(崔翔文)을 비롯한 4형제는 전라도 고부(古阜)로 유배돼 역적의 집안으로 몰락했다. 송설당의 아버지 최창환은 고부에서 태어나 자랐다. 뒷날 김천 지역에서 송설당이 ‘고부 할매’라고 불리게 됐다.

 최창환은 아버지 최상문이 1847년에 사망하자, 고부에서 김천으로 이주했다. 송설당은 1886년 아버지가 죽고, 남편과도 사별하자, 39세 때 불교에 귀의했다. 조상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전국에 흩어진 묘소에 비석을 세우고, 전국의 사찰 본사(本寺)에 불등을 밝혀 한을 풀고 기원했다.

 모친의 88세 미수연을 열었을 때 그녀의 나이도 어느덧 환갑이었다. 1896년 무렵에 상경해 적선동(積善洞)에 자리 잡았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1897년 2월에 경운궁(慶運宮: 덕수궁)으로 옮길 무렵에 송설당은 엄상궁(영친왕 어머니)의 친동생과 친하게 지냈다.

 엄상궁의 회임(懷妊) 소식을 들은 송설당이 강남의 봉은사(奉恩寺)에 다니며 왕자를 점지해 달라고 백일기도를 올렸고 왕자 출생을 현몽(現夢)했다. 송설당의 정성이 엄상궁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옴에 산후용품을 최고급으로 준비해 두었다가, 영친왕이 태어나자마자 엄상궁에게 바쳐서 높게 평가받았고, 마침내 송설당은 궁으로 입궐해 영친왕 이은(李垠)의 보모가 됐다.

 송설당은 근검과 내핍으로 거재(巨財)를 모아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송설당은 여생 동안 남은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15년 뒤 그해 먹을 몇 가마의 양식까지 전 재산을 김천고보 설립에 투입했다. 송설당이 1930년 32만 원이란 거금을 내놓아 김천고보를 설립한 것은 김천에 사는 고덕환, 이한기가 법조계 원로인 전 법무부장관 이인에게 부탁하고 이인이 박영효·이규완 등에게 부탁해 이뤄졌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과도 친숙한 사이로 그의 설득과 조언을 받아 기부하게 됐다고 한다. 32만 원이라는 거금은 당시 쌀로 계산하면 3만여 가마(쌀 한 가마 약 13원)나 된다. 이 사실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1935년 여사가 죽기 4년 전 김천고보 운동장에 여사의 동상이 세워졌고, 제막식에는 당시 쟁쟁한 명사인 송진우·안재홍·여운형 등이 참석했다.

 지금도 김천중·고 교직원, 동문, 재학생 모두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으로 동상에 경례를 올린다. 또한 1939년 6월 16일 85세를 일기로 서거한 송설당의 장례식은 여인으로서는 일찍이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성대하게 거행됐다.

 송설당의 불심은 상당히 깊었다. 1930년 2월에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계획을 확정하면서 작성한 계약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르고, 시신을 화장해 석함에 안치해 미리 만들어 둔 묘소에 안장할 것이며, 정걸재(貞傑齋) 대청마루에 불상을 봉안하라는 내용을 넣었다. 불상을 봉안하면서 그 좌우에 ‘이왕전하(李王殿下)’와 ‘이왕비전하(李王妃殿下)’, 즉 영친왕의 내외와 송설당 자신의 존위(尊位)를 봉안하고, 동생 최광익 및 여동생의 위패를 모시라는 당부도 꼼꼼히 챙겼다.

 이 분에 대해서는 소개할 내용도 많으나 지면 관계로 줄인다. 아무튼 교육입국의 대선각자 최송설당은 위대한 여성이며 만세의 사표(師表)이다. 

박희 선문대 교수·문학박사(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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