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칭기즈칸 따라 2500Km

대자연과 ‘혼연일체’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입력 2015. 06. 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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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몽골에 왜 왔는지 해답 찾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일

이곳서 힘들 때 위로받고

함께 웃고 울던 녀석들

더 많이 사랑해 줘야지

 

 


 

 


 

 

 온몸을 던져 달리며 깨달은 것



 오늘도 힘차게 말을 달렸다. 저 멀리 바다처럼 수평선이 보이는 히르가스 노르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고 얼마 전 눈이 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날씨로 변해 있었다.

 기온은 낮았지만 태양의 뜨거움은 온몸을 달궜고 결국 윗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긴 바지만 걸친 채 말에 올랐다. 드넓게 펼쳐진 대지가 눈앞에서 반기는 듯했고, 나는 마치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가슴을 펴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얼굴을 적시더니 내 가슴을 뚫고 온몸을 시원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달리는 도중 살며시 눈을 감고 온몸을 대자연과 말에게 맡겼다. 그 순간 완전한 자유가 나에게 찾아왔다.

 허공에 붕 뜬 채로 거기에 녹아들었다. 그대로 나는 우주가 됐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초인이 된 것처럼 세상을 초월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거구나. 육감으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몽골에 와야 했던 이유를. 나는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면서 깨닫게 됐다. 행복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몽골에 온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더 세상을 느껴야 한다. 여기서 어느 정도 살았다고 멈추면 그것으로 나는 끝이다. 더 달려보자. 나를 세상에 던져서 더 느끼고,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자.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진짜 일이다.

 그게 가장 먼저고 그다음에 모든 것들이 정해진다. 그렇게 하나씩 나를 완성해 나가자. 그렇게 나를 성장시켜 나가자. 내가 나를 바로 세우고 가야 내 인생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이 몽골 대륙에서 내가 만난 최고의 순간이라고 단언한다. 이 느낌과 기분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자. 이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해나가자. 이것이 내 인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더라도 진정한 자유를 가슴에 그리고 현실 속에 품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하자.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자유롭고 당당하게… 인생은 선택의 연속


 록따 형님은 말이 발을 저는 것을 줄이기 위해 편자를 박아서 가자고 했다.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편자 하나를 박는 데 1만 투그리. 그렇게 두 마리 말의 앞발에 총 4개의 편자를 박는 데 4만 투그리로 합의를 했다.

 곧이어 두 명이 탄 오토바이 한 대가 와서 식당 앞에 섰다. 편자를 박아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오자마자 아주 능숙하게 햇살이를 먼저 잡고 앞다리를 묶은 다음 뒷다리 한쪽에 끈을 걸어 말을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다리를 앞뒤로 묶어서 왼쪽 앞발에 먼저 편자를 박고 그다음 오른쪽 앞발에 편자를 끼웠다.

 작업을 하는 동안 햇살이는 거칠게 호흡을 내뿜었고 묶인 채로 다리는 떨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의 환자처럼 보였다.

 나는 햇살이의 목을 잡고 왼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얼굴을 어루만져 주면서 편자를 다 박을 때까지 계속 토닥여줬다. 말의 발에는 중간에만 신경이 있고 발톱 밑 테두리로는 신경이 없어서 아픈 것을 못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큰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못을 발바닥에 박아서 발톱으로 뚫고 나오게 하는데 무리를 주지 않겠는가.

 살짝 햇살이의 눈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게 보였다. 아프다는 것이다. 우리도 주사를 맞거나 할 때 눈물이 핑 도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록따 형 말로는 이렇게 하면 내일은 어렵겠지만, 이틀 밤을 자고 나면 아주 잘 달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햇살이뿐만 아니라 듬직이까지 각 20분 정도의 수술을 마무리했다.

 말의 발에 편자를 박고 출발을 서둘렀다. 오늘 온 거리가 16㎞밖에 안 돼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저녁 장을 봐야 하는 차는 먼저 앞질러 가고, 나는 천천히 말을 타고 새로 만들어진 아스팔트 도로 옆 갓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세상에는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봤다. 도전을 선택하기 위해 정말 깊이 고민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또 나를 얽매는 것을 놔주겠다고.

 선택의 상황에서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몽골에 오기 위해 준비할 때도, 그리고 몽골에 와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선택을 이어갔다. 모든 순간이 선택이었다. 결국 그 선택을 얼마나 자유롭고 당당하게 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4일 후에는 말들과 이별해야



 말들과 함께 지낸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됐다. 이제는 이 녀석들이 먹는 것만 봐도 내가 다 배부를 정도로 가족이 된 것 같다.

 ‘앞으로 4일만 타면 끝이다!’가 아니라, 4일 후면 더 이상 이 녀석들과 초원을 달릴 수 없다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린 것이다. 매일 우리를 위해 달리며 함께 웃고 함께 울던 녀석들인데, 헤어지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다. 매일매일 이 녀석들이 생각날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힘들 때 바로 이 말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로 맘에 안 들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한 동물은 이 녀석들뿐이었다. 그립고 생각날 때면 사진을 꺼내 보며 지금을 추억할 것이다.

 정이 든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인 동시에 언젠가 이별할 것을 알기에 아주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런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 녀석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온몸으로 사랑해줬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그것마저도 감사해야 한다. 남은 4일. 이 녀석들을 더 사랑해주고 아껴주자.

청년모험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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