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시와 가요로 본 한국사100년

사람 운명을 어찌 사주책에 맡기랴

입력 2015. 06. 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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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조가 탄복한 서거정의 비범


 “51만여 가지 운명으로 인명 판단할 수 없어”

세조에게 녹명 이론의 위험천만함을 직언(命: 사람이 본래 타고난 운명)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선의 문신이요, 학자다. 본관은 달성,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이다.



천문·의약 등 학문의 폭 넓어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미성(彌性)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고, 최항(崔恒)이 그의 자형이다. 학문의 폭이 매우 넓어서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복서(卜筮)·성명(性命)·풍수(風水)까지 달통했고,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시문(詩文)에 능했다.

1438년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 144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재감 직장에 제수됐다. 집현전박사·경연사경을 거쳐 1447년 부수찬으로 지제교 겸 세자우정자로 승진하고, 1451년 부교리에 올랐다.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종사관으로 다녀왔으며, 1455년 세자우필선이 되고, 1456년 성균사예로 옮겼다. 일찍이 조맹부의 ‘적벽부(赤壁賦)’ 글자를 모아서 칠언절구 16수를 지었는데, 매우 청려해 세조가 이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사주 따라 인명 판단은 위험천만”

 서거정과 세조 사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는 음양지리에 통달했다. 하루는 서거정에게 녹명(命: 사람이 본래 타고난 운명)에 관한 책을 읽고 대강을 설명해 가령서(假令書: 사주책 풀이)를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서거정이 여러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 분류하고, 범례를 붙인 다음 길흉신살(吉凶神殺)과 길흉논단을 차례로 붙여 완성해 올렸다.

 책을 받아 본 세조가 녹명 이론에 대한 서거정의 견해를 물으니 서거정이 설명했다. “지금 민간에는 사주(四柱)는 같으나 화복(禍福)은 모두 다르니 우리 눈에도 각각 다릅니다.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얘기하면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온 천하에 사주가 같은 사람이 수없이 많을 텐데 어찌 그 녹명에 따라 구분이 되겠습니까?”라며 녹명의 이론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이순풍(李淳風)·이허중(李虛中)·서자평(徐子平) 등이 운명을 점쳐 잘 맞혔는데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것은 거울에 몸을 비추면 여러 가지 안 보이던 것이 나타나듯이, 마음의 본래 모습인 허령(虛靈)을 가지고 거울처럼 사람을 비추어 보면 길흉화복이 모두 거울에 비치는 것같이 보입니다. 후세의 술사(術士)들이 옛사람이 쓴 글만 대충 익혀 51만8400가지의 운명으로 천하 억조(億兆)의 인명(人命)을 추단(推斷)하려는 것은 위험천만입니다”라고 했다. 설명을 들은 세조는 웃으면서 “경의 말이 옳다”라고 했다.



“서거정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

 세조가 대군(大君) 시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는데 서거정이 수행했다.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는 날 밤에 서거정 모친의 별세 소식이 세조에게 전해졌다. 세조는 서거정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이 내용을 숨기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날 밤 서거정의 꿈에 달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서거정은 “내 꿈에 달의 이상 징후가 보였는데, 달은 어머니의 상징이므로 집의 노모에게 반드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슬퍼했다.

 이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세조에게 그대로 아뢰니, 세조가 탄식하면서 “서거정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서거정을 불러 모친의 사망 소식을 알려주었다.

뒤에 세조가 임금 자리에 오른 후, 옛날 사신으로 갔을 때 압록강의 꿈 얘기를 하면서 “내가 서거정을 등용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의 재주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해마다 정초가 되면 점치러 다니는 사람들의 부질없음을 서거정은 꾸짖고 있다.



박희 선문대 교수·문학박사(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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