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시와 가요로 본 한국사100년

굶주린 백성 구한 조선의 여성 CEO

입력 2015. 05. 1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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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여인 거상 김만덕


생 신분에서 스무 살에 양인으로 환원

제주와 교역하는 유통업으로 부 이뤄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에 쌀 500섬

여성으로 ‘의녀반수’라는 최고 벼슬 올라

 

 


 

 

 

 

 김만덕(萬德·1739~1812)의 전기 ‘만덕전(萬德傳)’을 지은이는 정조 때의 문신인 채제공(蔡濟恭)이다. 만덕의 본관은 김해김씨,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기안(妓案)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 수업을 시작했다. 기생 신분이었지만 그는 몸가짐을 단정히 해 스무 살이 넘자 울며 자신의 뜻을 관에 탄원해 양인으로 환원됐다.

 그 후 만덕은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었고, 그 부를 계속되는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을 위해 쾌척했다. 정조시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아사(餓死) 위기에 처하자, 만덕은 유통업으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육지의 쌀을 사서 제주민들을 살렸다. 만덕의 인기는 남성들만 활개 치는 세상에서 여자가 홀로 많은 재산을 형성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것과, 어떤 남성보다도 많은 양의 곡식(쌀 500섬)을 쾌척한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만덕은 임금(정조)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고, 명예직이기는 하나 ‘의녀반수’라는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에 이르렀다. 정조가 그의 업적을 치하해 소원을 물었을 때 만덕은 주저 없이 금강산 구경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여성은 육지에 갈 수 없다는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여성의 테두리를 단숨에 뛰어넘으면서 여성에게는 부인됐던 이동의 자유를 청했다. 금강산 구경은 여성으로서는 꿈꿀 수조차 없었던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었다.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었고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관아가 만덕에게 편의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만덕이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여성으로서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 있는 여성 만덕을 칭송했다. 서울에 도착한 만덕은 당시 좌의정이던 윤시동(尹蓍東)의 부인 처소에 머물렀다. 입궐해 ‘한중록’을 지은 혜경궁 홍씨를 알현했다. 혜경궁은 “네가 여자의 몸으로 굶주린 수많은 백성을 의롭게 구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며 후한 상을 내렸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기생으로 성공해 가족의 명성을 더럽힌다는 질책 때문에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왔으나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기근에 처한 가족을 구함으로써 가족과 화해했다. 독신녀로서 활발해진 해상을 이용한 유통업에 눈떠 여성기업인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던 창의적인 개척자였다.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은 만덕의 전기에서 만덕을 “몸은 크고 뚱뚱하며 키가 매우 크다. 말은 유순하며 외형은 후덕한 맛이 나타나고, 두 눈동자가 맑고 투명하다. 일흔의 늙은 나이에 얼굴과 머리가 신선이나 부처를 방불케 한다”라고 묘사했다. 다산 정약용이 김만덕에게 부탁을 받고서 시권(詩卷)에 발문(跋文)을 써주며 만덕에게 ‘삼기사희(三奇四稀)’가 있다고 했다. 기생이 과부로 남아 수절한 것, 기꺼이 많은 돈을 희사한 것, 섬에 살면서 산을 좋아한 것이 세 가지 기특한 삼기다. 여자로 겹눈동자를 가졌으며, 천민의 신분으로 역말을 타고 왕의 부름을 받았다. 기생으로 승려를 시켜 가마를 메게 했고, 외진 섬 사람으로 내전(內殿)의 사랑과 선물을 받은 것. 이것을 네 가지 희귀함이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 유배 시절에 만덕의 오빠였던 김만석의 증손자에게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졌다’라는 뜻이 담긴 ‘은광연세(恩光衍世)’를 써 주었다.

 제주도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김만덕.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대CEO 김만덕의 경제적 활동이 오늘같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귀감(鑑)으로 부각된다.

박희 선문대 교수·문학박사(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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