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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침투작전 표지석 운반...전천후 임무수행에 보람”

이주형 기사입력 2015. 04. 21   19:23

<37> 1988년 시누크(CH-47) 대대 창설요원, 항작사 이용우 준위

1988년 6대의 시누크 헬기로 대대 창설

DMZ 월동물자 첫 지원때 소초 장병들 감격

인원ㆍ화물수송·대민지원 등 군 전력 이바지

 

 


 


 


 


 

 1988년 7월 26일 부산항 8부두. ‘부우웅’ 하는 기적 소리를 울리며 입항했던 화물선에서 선적됐던 화물이 하나둘씩 하역되기 시작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육군항공여단(현 항작사) 윤희원 대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가슴은 타들어가며 조바심이 났다. “왜 빨리 안 내려지나, 무슨 일 있는 것 아니겠지.” 마침내 기다리고 있던 화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헬기였다. 이어 이상이 없는지 점검에 들어갔다. 분리돼 있던 부분이 조립되고 다시 엔진을 비롯한 각 계통을 확인한 뒤 화물은 육중한 몸을 일으켜 하늘로 날아올라 창원으로 향했다. 우리 군의 전력 강화를 위해 도입된 기동헬기 시누크(CH-47) 1호기가 한국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당시 미군들이 그랬답니다. 너희가 시누크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운용할 능력이 되느냐고.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미심쩍은 시선으로 물어본 겁니다. 그만큼 시누크는 당시 경제적 지원이 받쳐주고, 조종사의 탁월한 능력이 있어야 운용이 가능한 첨단 무기체계였던 것입니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 한국형헬기개발사업단(KHP) 지원실의 이용우 준위는 시누크 도입과 관련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988년 9월 1일 창설식을 한 시누크 대대의 창설요원이었다. 사실 시누크의 도입은 매우 긴급하게 진행됐다. 1988년 2월께 조종사 5명과 정비사 등이 미국 보잉사에 가서 교육을 받고 3개월여 만인 5월에 귀국했다. 이어 6월 말 창설준비위원회가 생겨나고 9월 1일 창설식을 열었다.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대비 차원에서 그렇게 이뤄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개 새로운 무기체계가 들어오면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년간의 사전 준비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대 창설은 너무도 신속하게 추진됨으로써 다른 부대가 창설되는 것보다 어려움이 많았고 시설이나 체계 등 부대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비고도 없었고, 이글루에 합판을 대어가며 겨울을 날 정도였다.

 그럼에도 장병들의 사기는 높았다. 조종과 정비 등 운용능력에 대한 전수가 빠르게 전파되고 그에 따라 전력화도 속도를 더했다. 그리고 1989년 12월 공식적인 첫 임무가 떨어졌다. 오대산에서의 목재 수송이었다.

 “청와대 신축공사, 그러니까 춘추관에 우리 국산자재를 써야 한다고 해서 당시 관계자들이 산을 헤매고 다니면서 나무를 찾았고 그것을 벌목해 놓으면 차량 사용이 가능한 장소까지 이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주 힘든 임무입니다. 나무들이 지름이 1.5m, 길이가 20m 이상 되는데 이것을 줄을 내려 묶고 주변 장애물을 피해 올린 다음 이동해야 했죠. 또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시락도 나눠줄 방법이 없어 시누크로 줄에 묶어 내려주기도 했고요. 나중에 청와대에서 수고했다고 기념품으로 필통을 전달해 주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지원해 준 목재를 사용하다 남은 부분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DMZ) 우리 소초들의 유류 등 월동물자 지원도 시누크의 몫이었다. 첫 지원을 나갔을 때 장병들은 매우 눈물겨워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지원을 담당했던 것은 미군의 시누크로 당시만 해도 설움을 받았다는 것. 기상이 나쁘면 지원을 며칠 연기하는 것도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군에 의해 운용되는 시누크가 더욱 기쁘고 반가웠다고 한다.

 이후 시누크의 활동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인원과 화물 수송지원이 필요하면 어디든지 날아갔다. 군의 작전을 넘어 국가적 사업뿐만 아니라 대민지원에도 많이 투입됐다. 태백산ㆍ소백산 등 전국 각지에 있는 명산들의 표지석도, 도서지역의 (심정)시추기도, 지상 장비로서 운반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모두 지원에 나섰다. 나아가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 격포 서해페리호 사건 등에도 적극 지원했다.

 2007년 수리온 제작지원을 위해 KHP 지원실로 자리를 옮긴 이 준위는 올 10월 전역을 한다. 현재 현역으로 남아 있는 창설요원은 그와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대령 한 사람뿐. 그래서 그의 전역은 일선 현장에서 창설요원들의 흔적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셈이다.

 “1982년도에 임관했으니 33년간 근무한 것인가요. 많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하나 말할 게 있습니다. 똑같은 항로를 여러 번 다녔더라도 공중ㆍ해상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서 다닌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시누크 대대는 창설 이후 대한민국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다양한 임무를 해오면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군 전력 발전에 이바지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대대의 창설요원이었다는 게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 시누크 헬기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보급된 중량급(重量級) 헬기로 우리 군은 1978년부터 시누크(CH-47) 헬기의 도입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시누크가 대북 침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판매를 불허했었다. 1980년대 들어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전력증강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때 도입을 재차 추진하게 됐다. 결국 1988년 9월 1일 6대의 시누크로 대대를 창설했고, 이후 추가로 도입되며 지금은 2개 대대로 운용되고 있다. 육군과 별개로 공군도 1992년 탐색구조헬기로 HH-47D 헬기를 도입, 인도받아 운용하고 있다.시누크가 야간 공중강습작전을 펼치고 있다.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밤낮이 따로 없다.

부대 제공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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