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챔프, 클라우제비츠에게 길을 묻다

“포기하는 것은 영혼이 죽은 것이다”

입력 2014. 11. 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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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스키에이트·모노스키와 국가총력전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 할 때

단 한 번의 결전으로 판단 일러

어렵고 힘들더라도 굴복 안 돼

 

 


 

 

 ● 국가총력전에서 게릴라전은  

 클라우제비츠는 제6편 26장에서 게릴라전과 함께 국가총력전에 대한 주장도 함께 하고 있다.

“게릴라 부대는 적 주력부대에 대한 공격을 지양하고, 적 핵심을 격파하려고 해서도 안 되며, 단지 적 외곽과 주변만 갉아 먹어야 한다. 의용대나 무장한 게릴라부대는 적 주력부대나 대규모 부대를 상대로 사용할 수 없고 투입해서는 안 된다.” 그의 이 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아라비아 반도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인민전쟁은 안개나 구름과 같아야 하며 어느 곳에서도 저항하는 몸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녀서는 안 된다. 안개는 어느 지점에서는 한번 번갯불이 번쩍일 수 있도록 위협적인 구름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래에 있을 전쟁은 정치적으로 각성된 열정적인 국민들에 의해 수행될 것이며,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고, 전장에서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하는 정부는 그 운명이 단 한 번의 결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죽기까지는 언제나 충분한 시간이 있다. 한 국가가 적과 비교해 아무리 작고 약하더라도 최후의 노력을 중지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는 것은 자기 영혼이 죽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 이색 스키, 스키에이트와 모노스키 

 게릴라전을 설명하기 위한 스포츠로는 스키가 제격이다. 고전적 스키에 식상한 마니아들은 이색 스키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단조로운 일반 스키에서 벗어나 색다른 묘기와 스릴을 느끼려는 시도가 스키에이트와 모노스키다.

스키에이트(skiate)는 스키에 스케이트를 접목했다. 보통 스키가 자신의 신장보다 긴 플레이트를 사용하는 데 비해 스키에이트는 부츠보다 약간 긴 45㎝ 정도의 플레이트를 사용한다. 따라서 눈과 마찰 면이 적어 움직임이 편하고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또한 폴을 쓰지 않고 부츠를 고정하므로 부상 위험도 적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더구나 바인딩이 자유로워 한 대로 온 가족이 사용할 수 있다.

 모노스키(monoski)는 스키에 스노보드를 접목했다. 한 개의 스노보드 위에 두 발을 세로로 나란히 고정시키고 폴을 사용해 타는 것으로 스키와 스노보드의 장점만 모아 놓았다. 전통적 스키 대신 플레이트 한 개로 안정된 라이딩을 할 수 있다. 더구나 폴을 사용해 방향 전환이 용이하다. 두 발을 따로 움직이는 스키와는 달리 두 발을 함께 움직여야 하므로 운동량이 제법 많아 역동적인 활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다. 따라서 스키 경력이 많은 스키어들에게 적절하다.

스포츠에서 스키에이트와 모노스키가 한 것처럼 주코프는 기존의 전쟁 관념을 깨뜨렸다. 그는 전쟁 경험이 풍부한 장군으로 1941년 12월 5일, 히틀러의 초기 모스크바 공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 모스크바 방어전 

 히틀러는 1939년 8월 스탈린과 맺은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했다. 독일군은 153개 사단 360만 명, 전차 3600대, 전투기 2500대였고 소련군(Red Army)은 158개 사단 290만 명, 전차 1만5000대, 전투기 8000대였다. 스탈린은 벼랑 끝에 몰렸다. 더구나 일본이 이 기회를 이용해 극동(極東)에서 소련 배후(背後)를 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1941년 9월 도쿄에서 활약하던 소련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의 결정적 첩보가 날아왔다. 인도네시아 등 남방 석유 자원 확보에 혈안이 된 일본군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40만 명의 극동군을 빼내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함으로써 독일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구할 수 있었다.

 주코프는 가을비로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고 겨울이 시작돼 독일군 공격이 주춤하는 틈을 타 신병들을 훈련시켰다.

시베리아에서 막 도착한 전략 예비군을 동원해 반격을 가했다. 독일군 동부전선 중앙에 큰 틈이 생겨 주코프는 전장 주도권을 장악했다. 다음해인 1942년 8월 주코프는 붉은 군대 최고사령관 대리로 레닌그라드의 포위를 풀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을 궤멸시켰다.

1961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전 구간 9288㎞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히틀러가 초보 스키에이트를 타고 공격했고, 스탈린은 숙련된 모노스키로 방어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오홍국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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