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3야전군사령부 군악대 ‘창의 생활관’
“총 대신 악기 드는 시간 많아도,
전투복보다 빨간 제복 입는 날 많아도
‘조국수호’ 군인의 임무는 같죠”
악보조차 못 보던 병사, 이젠 멋진 연주
“참전용사들이 반겨주실 때 긍지 느껴”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있는 시간이 많다. 전투복보다 행사복을 입는 날이 다수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대한민국 육군 장병들. 가는 길이 다르다고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조국 수호의 임무를 다한다. 선율을 통해 강군의 힘을 더한다. 행사가 있는 곳에 항상 ‘빨간 제복’으로 등장해 그 격을 높이는 대원들. 육군3야전군사령부 군악대 ‘창의 생활관’의 대원들이다.
● 다양한 출신들이 함께 만드는 천상의 하모니
군악대에 대한 선입견 하나. 대원들은 모두 왕년에 ‘한가락’ 했을 것이란 지레짐작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오해다. 음악인을 우대하지만 절대 기준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창의 생활관’은 다양성의 모범사례다. 비음악인과 음악인이 생활의 하모니를 바탕으로 선율의 하모니를 이뤄낸다.
한용수(호른) 일병은 군악대를 희망하는 비음악인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한 일병은 입대 전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장기는 행사진행, 즉 MC였다. 마이크만 잡으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에게 군 입대는 절망과 동시에 기회가 됐다.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지만 복무 기간 중 MC를 볼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에 군악대의 문을 당당히 두드렸다. MC를 향한 열망에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음악적 무지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피눈물 나게 연습했다. 소리가 났고 음정을 익혔다. 이등병 시절은 거의 악기 연습으로 보냈다. 첫 합주에 자신의 소리가 녹아들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최근엔 연주 중 솔로 파트도 거뜬히 소화했다. 한 일병은 “당시 너무 긴장해 소리도 내기 힘들었다. 연습할 때는 20번도 넘게 틀렸지만 다행히 연주는 성공했다”며 웃었다.
김지민(테너 색소폰) 일병은 성악가 출신이다. 그것도 이탈리아 로마 유학파다. 그 역시 악기는 군에서 처음 접했다. 김 일병은 “처음 배울 때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며 “음정에 가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성악과 기악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재윤(트럼펫) 일병은 사회에서 포기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군에서 다시 찾은 경우다. 그는 음대를 목표로 트럼펫을 연주하고 또 연주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실망감에 악기를 접었다.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보충대에서 군악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내키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 하지만 테스트를 위해 악기를 잡으니 식었던 열정이 되살아났다. 약 2년 만에 듣는 소리가 짜릿했다. 김재윤 일병은 “훈련 기간에 악기를 불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며 “정말 너무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 때론 실수도 하지만 관객들 보며 보람과 감동
모든 장병이 피하고 싶은 것이 실수다. 군악대 역시 크고 작은 실수에 울고 웃는다. ‘창의 생활관’ 역시 지우고 싶은 기억이 한두 개가 아니다. 김재윤 일병은 최근 발생한 실수 아닌 실수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지난달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취임식 행사에서 바람에 행사모를 날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의식행사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서 식이 끝나기만 바라며 연주를 했다.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실수에 대한 대가는 각오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오히려 칭찬이었다. 심언호(소령) 군악대장은 “행사 중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식을 망친다. 당시 김 일병이 끝까지 제자리를 지켜 대견스러웠다”고 말했다.
올해 초 발생한 ‘심벌즈 사고’는 생활관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가두행진 중 연주자의 혼을 다한 연주에 그만 심벌즈가 뒤집혀 버린 것. 중도 중단이란 있을 수 없기에 연주가 끝날 때까지 둔탁한 소리는 계속됐고 소수의 ‘절대음감’ 관객들만이 그 사고를 알아채기를 기도해야 했다.
매년 수많은 행사에 참가하는 만큼 대원들은 기계적 연주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행사의 성격과 의미를 미리 파악하고 연주자의 마음이 음악으로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최형열 상병은 “행사 전 군악대장이 설명하는 행사 내용을 들으며 공연 준비를 한다. 보은행사의 경우 순국선열들에 대한 이해 없이, 행사에 임하는 의미를 모르고 연주를 하면 듣는 이들이 바로 알아차린다”고 강조한다. 몸은 힘들지만 보람도 많다. 수많은 공연을 하며 입대 전 사회에서 알지도, 접하지도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됐다는 점도 군악대에 긍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송성헌 일병은 “6·25 참전용사 보은 행사를 가면 참전용사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정말 반가워하신다. 군악대가 전쟁 당시 그분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듯하다. 그분들을 위해 공연을 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365일 악기연주만 하느냐고요?
경계 근무는 물론 유격훈련·혹한기훈련 모두 참가
올초엔 영하 20도 추위 속 전방 GOP부대 체험도
군악대라고 군악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근무는 물론 일반 훈련을 모두 소화한다. 불침번도 선다. 유격훈련과 혹한기 훈련도 당연히 참가한다. 생활관도 일반 병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공간 한쪽엔 악기보관함 대신 총기 보관함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복무 기간 내내 악기만 다룬다고 오해한다. 군악대원들은 이 사실이 억울하다. 최형열 상병은 “심지어 유격훈련 조교들은 군악대원들을 유독 엄하게 대한다”며 한탄한다.
지난 2월에는 2박 3일 동안 전방 GOP부대를 방문하고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 철책 경계근무도 체험했다. 분단의 현실을 직접 보고 타 부대원들의 힘든 근무환경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심언호 군악대장은 “공연과 경계근무, 전투훈련을 병행하면서 본인들이 가장 고생한다고 푸념하는 대원들에게 더 힘든 여건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장 체험 후 대원들의 불평이 싹 사라졌다”며 웃었다.
음악만큼 훈련도 열심히 하는 ‘창의 생활관’에서는 전투군악대원도 탄생했다. 박주훈 일병은 사령부 근무지원단에서 유일하게 20발 사격 만점을 기록해 포상휴가까지 다녀왔다. 박 일병은 “원래 사격에 자신이 있었다”며 “훈련소에서도 기회가 있었지만 총기가 고장나 만점 획득에 실패했는데 여기서 그 원을 풀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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