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육군37사단 중원부대 택견 동아리
병영문화 예술 체험 사업 일환 인간문화재·국가이수자가 지도
‘전통무예 지킴이’ 자부심 충만 세계택견대회도 출전 5위 기염
▲ “이종격투기가 일직선이라면 택견은 외유내강의 곡선!”
“자, 윗대(‘대궐에서 가까운 쪽’을 이르는 말) 안짱 걸고 덧걸이 들어갑니다. 구분 동작으로, 하나! 밀고 안짱 거는 거까지. 둘! 오른손으로 목 잡고 팔 잡고, 셋 하면 걸어서 넘깁니다. 셋!”
“이~크!!!”
지난 20일 오전 육군37사단 중원부대 각개전투훈련장. 평소 용사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던 이곳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민화(民?)에서 막 걸어나온 듯 무명 저고리를 입은 한 무리의 용사들이 택견 국가이수자 전충수(42) 사범의 우렁찬 구령에 맞춰 ‘마주메기기’ 기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마주메기기란 2인1조의 겨루기를 말한다.
생소하지만 친근한 구령처럼 겨루기의 시작도 일반적인 격투기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예(禮)부터 엄격하게 지켰다. 마주 선 용사끼리 90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히 절을 한 뒤,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서거라!’ ‘섰다!’라는 구령으로 상대의 준비 상태를 재차 확인했다.
이어 서로 오른쪽 무릎을 맞댄 용사들은 황금 들녘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앞으로 뒤로 가볍게 리듬을 탔다. 춤을 추듯 부드럽게 서로를 탐색하나 싶더니 윗대 용사들이 단전에 힘이 들어간 소리로 ‘이크!’ 하면서 순식간에 아랫대(대궐에서 먼 쪽) 용사들을 공중으로 붕~ 띄워 땅으로 내리꽂았다.
통신병 황현명(21) 일병은 “킥복싱·무에타이 등 여러 가지 스포츠를 결합한 이종격투기를 입대 전 취미로 즐겼는데, 이종격투기가 일직선이라면 택견은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숨겨진 곡선”이라며 연말에 1동(단) 획득에 도전할 계획임을 밝혔다.
▲ 세계 대회 생활체조 부문 출전 5위, 무예의 도시도 ‘깜짝’
육군37사단 중원부대 용사들이 ‘전통무예 지킴이’로 나섰다. 세계 무술 종목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2011)에 등재된 우리의 전통무예 택견을 배우고 있는 것.
택견동아리는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병영문화 예술 체험 사업’의 하나로 올해 3월 신설됐다. ‘병영동아리의 결정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알찬 짜임새를 자랑한다.
인간문화재 정경화(60) 선생과 그의 제자인 국가이수자들 등 명품 지도자들로부터 택견의 기본인 품밟기·활갯짓 등 혼자 익히기의 낱기술과 안짱걸기·딴죽 등 마주메기기·견주기 등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있고, 여기에 도복과 미투리(택견화), 교재 등 교육자료와 물품 일체도 무상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충청북도 충주시를 지키는 용사들이 이곳에 총본산을 둔 민족무예 택견을 지키고 명맥을 이어간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사단법인 택견보존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의 택견 인구는 30만 명에 불과하다.)
‘무예의 도시’로 불리는 충주에서 중원부대 택견동아리는 유명하다. 군 장병이 택견을 배운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이들은 지난 8월 30일부터 이틀간 이 지역에서 열린 ‘세계택견대회’에서 생활체조 부문에 출전해 23개 팀 중 5위에 올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본부중대 배동근(22) 상병은 “택견대회 덕분에 동기 부여가 더 됐고, 지역 주민의 박수 소리에 자긍심도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 운동 싫어하는 호 일병도 웃게 하는 ‘마성의 무예’
택견은 외유내강의 무술로 그 뿌리를 고구려에서 찾고 있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고구려 태조왕 때 택견이 존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택견은 신라·백제로 확산됐으며 신라 무열왕 시절 화랑들이 주된 무술로 이를 익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택견보존회 신종근 전무이사는 “중원부대 용사들이 선조의 기상과 택견의 기본정신인 ‘참’ 정신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수련 후 전통 다례·명상 등도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쓰는 지도자와 부대의 노력에 용사들의 만족도도 상한가다.
본부중대 정훈병 배동근(22) 상병은 “뻣뻣했던 몸이 많이 유연해지고 체중도 7㎏이나 빠졌다. 체중조절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최고”라고 택견 예찬론을 펼쳤다.
선임의 제안으로 가입했다는 호진우(21) 일병도 “운동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주말마다 선·후임과 함께 무예를 익히다보니 자연스럽게 단합할 수 있어 좋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군 생활에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용사들의 긍정적인 변화는 지휘관 입장에서도 반갑기 그지없다. 부대장 이남신 대령은 “선·후임이 격의 없이 몸을 맞대고 땀 흘리며 함께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우애가 길러지는 효과도 내고 있다”면서 “택견동아리원들을 지역축제와 나라사랑공연 등에 출연시켜 지역을 책임지는 친근하면서도 강한 부대 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