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도로명주소로 보는 팔도강산

[도로명주소 & 현충시설] 평생 항일운동에 투신한 여성독립운동가

김용호

입력 2014. 09. 29   11:28
0 댓글

<30> 애국지사 김마리아 동상 / 서울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98(보라매공원 내)


1919년 2ㆍ8독립선언서 몸에 숨기고

귀국해 독립사상 고취하다 체포

1989년 각계 성금으로 동상 건립

 

 

 

 “참매를 아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만 갸웃한다. 그러나 보라매는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보라매는 공군을 상징하는 조류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은 보라매나 참매나 같은 새를 일컫는 말이다. 새끼 참매는 털갈이를 하지 않아 보랏빛을 띠기 때문에 보라매라 부른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은 대한민국 공군과 밀접한 공원이다. 지난 1986년 5월 5일 옛 공군사관학교 자리인 이곳에 공원을 개원하면서 공군의 상징인 ‘보라매’를 그대로 사용한 것.

 공군을 상징하는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보라매공원은 서울 시민 안보교육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유는 순국열사 김마리아 선생 동상과 에어파크가 있기 때문이다.

 보라매청소년수련관 앞 아담한 동상 뒤로 30~40년생 백일홍이 선홍빛 꽃을 활짝 피우고, 그 너머로 주상복합 랜드마크 타워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공원에는 아름드리 은행, 느티, 버즘,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도심의 안락한 공간에 자리잡은 김마리아 선생 동상은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각계의 성금을 지원받아 1989년 건립, 그의 민족사랑과 애국심을 후대에 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김마리아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교육자이자 애국지사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평생 조국 광복에 투신했다. 선생은 아버지가 세운 초등학교를 거쳐 1910년 서울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 수피아 여학교와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홀연히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18년 말 도쿄유학생 독립단에 가입했으며, 1919년 YMCA회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식에 적극 참가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 유학생들을 감시했지만 상대적으로 여성에겐 소홀했다. 이때 김마리아 선생이 2ㆍ8독립선언서를 몸에 숨기고 국내로 귀국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에 힘쓰다 11월 비밀조직이 탄로나 3년형을 선고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난 선생은 치료 중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황해도 대의원, 국민대표회 대표 등으로 활동했으며 1923년 7월 미국으로 재망명했다.

 조국 독립이라는 큰 뜻을 품고 시카고대 대학원, 뉴욕 신학교 등에서 수학하며 1928년 1월 뉴욕에서 근화회를 조직, 항일여성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은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3월 13일 평양에서 순국했다.

 한편 옛 공군사관학교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에어파크에는 한때 지구촌 제공권을 장악했던 F-4D팬텀기를 비롯해 F-86전투기, 헬기, 수송기 등 다양한 항공기들을 전시해 항공기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보라매청소년수련관 인턴 임가희(22) 씨는 “애국지사 김마리아 열사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하는 관람객들을 보고 입간판을 유심히 읽어 보았다”면서 “여자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선생의 용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21세기 동북아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국가관과 안보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료제공:서울지방보훈청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