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정체성 잊은 듯 재미만 지킨 사극 미래 보는거울‘역사’를 판타지로

입력 2014. 06. 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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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끝>무예사·군사사 고증은 자존심 문제


아무리 뛰어난 文의 문화 꽃 필지라도 武의 문화 등한시 땐 국가에 위기 닥쳐

 

 

   조선 시대 무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문무겸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내 몸으로 증명하는 것, 그것이 어찌 보면 더 실증적이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호기심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현대의 기계화·전산화된 첨단 군사무기를 다루는 군인에게 과거의 낡은 군사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는 우리 선배 군인들이 피땀 흘려 지켜내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우리 군의 정체성도 없다.

 무예사와 군사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TV 사극 속 고증의 문제다. 사극이라는 것이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지는 오락물이기도 하지만 사극 속 무예사·군사사와 관련한 잘못된 고증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본 연재물 첫 번째 주제였던, 주인공들이 늘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원래 전투용 칼은 몸에 차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 시대의 경우 칼집에 띠돈이라는 360도 회전형 고리를 달아 몸에 찼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 사극 속에서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는 화전(火箭)의 문제나, 천자총통·호준포를 비롯한 전통 화포류의 무기에서 발사된 포탄이 날아가 거대한 폭염과 함께 터지는 충격신관형 폭발물의 문제, 임진왜란 후 조선에 도입된 당파(일명 삼지창)가 조선 전기 포졸들의 필수 무기로 굳어진 현실 등 수십 가지의 군사사 고증 오류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얼굴 알리기에 급급해 병사들도 쓰는 투구를 쓰지 않고 적진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 들어가 단칼에 갑옷 입은 군사들을 베어 넘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사극이 아닌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상력이 가미된 사극을 연출했던 사람들이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기에 가장 사실적이어야 할 다큐멘터리마저 엉터리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사극의 무예사·군사사 고증 행태라면 임진왜란 때 선조가 스마트폰을 꺼내 이순신 장군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장 상황을 묻고 이 장군이 아주 힘들다는 이모티콘을 보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지경이다. 아니면 거북선 머리에 화염방사기를 달거나 판옥선 위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왜군에게 난사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필자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십 년 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전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방일보에 이와 관련된 연재 기사를 쓰게 됐고 최근 발행된 한국사학회 논문집 ‘사학연구’ 114호에 ‘TV 역사물의 고증 한계와 그 대안’이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관련 학자들이 곰팡내 나는 문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분에도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특히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은 선배 무인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과 대중은 TV 사극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아니 각인되고 있다. 역사 왜곡은 그리 먼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한류라는 이름으로 그런 작품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소개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아무리 뛰어난 문(文)의 문화가 꽃필지라도 무(武)의 문화, 즉 장수와 군사력을 등한시하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국가에 위기가 닥쳤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국방에 대한 관심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는 그 고증 오류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이 또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다.

<최형국 역사학 박사·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연재를 마치며 -

필자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학 공부를 시작했다. 갑옷을 입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전통시대 무예를 수련하다가 ‘무예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통시대 ‘무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다 근원적으로 풀어보기 위해 붓을 잡게 됐다. 그렇게 무예를 통해 몸 공부를 한 지가 20여 년이 됐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박사 후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몸과 무예에 대한 역사는 지극히 파편화돼 사료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역사 속에서 소외된 그들의 삶을 되짚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비록 문학박사(역사학)지만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 무예 연구’라는 이색적인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됐다. 이를 위해 사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내 몸으로 직접 말을 달리며 각종 마상무예를 훈련하고 몽골까지 해외 전지훈련을 진행해 기병 전술을 실증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지금도 땡볕에서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매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무예를 수련하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최형국 소장은 “그동안 부족한 지식으로 풀어낸 글을 꾸준히 지켜봐 준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면서 “특히 현역부터 예비역, 민간 군사사 연구가들까지 직접 연락해 보여주신 깊은 관심과 지적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더욱 신경 쓰며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채찍질이 됐다”고 털어놨다. 또 “한국전통무예연구소 홈페이지(http://muye24ki.com)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전통 군사사와 관련된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며 무예사와 군사사에 대한 독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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