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차이야기

관통력 늘리기 위해 강선 없는 활강포 채택

입력 2014. 03. 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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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소련 T-62·T-64 전차


 

T-64, 복합장갑·자동장전장치 적용
T-64는 당시 철저한 비밀장비 분류

 

1961년 소련은 새로운 형태의 전차를 개발했다. 바로 T-62였다. 기본적인 틀은 T-54/55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T-62는 기존의 그 어떤 전차들과도 달랐다. 바로 강선이 없는 활강포를 채택한 것이다.

 관통력을 늘리기 위해 철갑탄의 관통자를 최대한 길고 가늘게 만들어야 했는데, 문제는 강선이 있을 경우 회전 때문에 길고 가는 관통자의 탄도가 불안정해지기 쉬웠던 것. 이 때문에 소련은 숫제 강선을 없애고 탄도의 안정 자체는 관통자에 날개를 달아 해결하기로 했다. 이것이 전차포에 최초로 활강포가 채택된 사례다.

 T-62의 115㎜ 활강포는 실제로 꽤 높은 관통력을 갖고 있기는 했으나 문제도 적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명중률은 크게 떨어졌고 사격통제 시스템도 사실상 망원조준경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T-54/55의 것을 이어받았다. 사실 소련은 이 전차를 아주 잠깐만 쓰고 버릴 작정이었다. 말 그대로 T-54/55에 활강포만이라도 급하게 단 전차로 개발했던 것이다. 사실 소련군이 생각한 새로운 주력전차는 T-62가 아니라 훨씬 발전된 T-64였고 T-62는 64의 충분한 수효가 갖춰질 때까지 사용할 응급 수단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6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T-64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때까지의 다른 전차들과는 매우 달랐다. 개발에 걸린 시간만 해도 11년이나 됐으며 시작부터 매우 다른 콘셉트를 여럿 채택했다. 주포는 원래 T-62와 같은 115㎜였으나 67년부터 등장한 개량형 T-64A에서는 보다 강력한 125㎜ 활강포가 갖춰지면서 한동안 서방 측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게다가 추가로 개량된 T-64B형은 주포 발사형 미사일인 9M112 ‘코브라’까지 사용할 수 있어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장만이 아니었다. 먼저 T-64는 자동장전장치를 채택했다. 서방 측에서도 프랑스의 AMX-13이 자동장전장치를 채택했지만 주력전차에서는 T-64가 최초였다. 덕분에 T-64는 승무원이 3명으로 줄었다. 또 장갑도 복합장갑 개념이 최초로 적용됐다. 발달되는 대전차 화기의 위력을 생각하면 무작정 두껍게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련 설계진은 단순한 철판이 아니라 철판과 철판 사이에 유리섬유로 보강된 플라스틱을 끼워넣어 성형작약탄(대전차고폭탄)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단순한 철판의 두께보다 더 강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복합장갑의 개념이 실용화된 것이다.

196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T-64는 자동장전장치, 복합장갑 개념을 도입하는 등 기존 전차와 다른 콘셉트를 여럿 채택했다. 사진은 T-64B전차. 
필자제공 

 

물론 이처럼 획기적인 개념을 갖춘 T-64지만 문제도 적지 않았다. 자동장전장치는 고장이 잦은 데다 이에 관련된 승무원 사고도 적지 않았다. 또 가격도 비싸 초기에는 생산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게다가 소련은 이 전차를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기 때문에 90년대까지 소련 이외의 나라에는 단 한 대도 수출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소련은 T-64의 배치와 생산을 힘겹게 진행하는 한편 T-62의 생산량과 기간을 예상보다 늘려야 했다. 소련의 우방에 대한 원조나 수출은 물론 소련군 자신에도 필요한 대량의 전차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T-62의 생산량·사용량을 모두 늘려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련은 T-62를 75년까지 2만2700대나 만들어야 했다.

 또 단기간 사용하고 폐기될 것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사용 기간도 늘어나 90년대까지 개량을 거쳐 일선에 머물러야 했다.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로,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등으로부터 노획한 T-62를 일부 개량해 사용했다. 엔진이나 사통장치 등은 신형으로 바꿨지만 주포만큼은 그대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115㎜ 활강포가 무시할 만한 무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T-64는 87년까지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쳐 생산되면서 T-62만큼은 아니더라도 1만3000대라는 무시 못할 수량이 만들어져 소련군의 주력전차 중 하나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소련군에서 T-64는 오랫동안 최일선 부대의 장비일뿐만 아니라 철저한 비밀 장비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T-64의 가치는 이런 숫자나 전투력보다 더 큰 데 있었다. T-64 이후 개발된 소련 전차, 즉 T-72와 T-80 등은 모두 복합장갑과 자동장전장치라는 T-64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T-64의 등장이야말로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소련 전차의 개발 방향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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