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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곳에 오르시니, 하늘이 무너지다

입력 2014. 02. 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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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승하-임금의 죽음


 ‘하늘이 무너지다.’

 왕조시대, 임금의 죽음을 표현한 이미지 중의 하나다. 만인의 평등을 특징으로 삼는 민주주의의 인생들에게야 가슴에 와 닿지 않겠다. ‘천붕(天崩)’은 당시 이런 뜻으로 쓴 일종의 의전용어다.

‘오늘의 소사(小史)’ 같은 기록을 보니 요즘 ‘승하(昇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왕의 죽음은 ‘사(死)’ 혹은 ‘몰(歿)’ ‘망(亡)’ 등의 직설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늘(天)이 무너지다(崩)’라는 천붕, ‘머나먼 곳(遐)에 오르다(昇)’는 승하 등의 은은한 뜻으로 ‘그 크디큰 슬픔’을 묘사했다. 임금의 장례는 은유(隱喩)의 바다였던 것이다.

 임금의 죽음에만 쓰는 단어로는 ‘훙(薨·죽다)’이 있다. ‘가다’는 뜻 ‘서’를 붙여 ‘훙서(薨逝)’라고도 썼다. ‘임금님 전용’ 단어이기는 하나 그나마 에두르지 않고 ‘죽다’라는 뜻을 바로 표현한 말이다. 이 말 말고는 거의 은유의 감각으로 풀어야 한다.

 ‘붕어(崩御)’는 천붕과도 같은 이미지다. ‘어(御)’는, 영어의 로열(royal)처럼 임금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상빈(上賓)’ ‘빈천(賓天)’은 높은 곳 또는 하늘의 손님이 됐다는 뜻이다. ‘승하(升遐)’ ‘등하(登遐)’는 ‘승하(昇遐)’와 비슷한 뜻이며, ‘예척·禮陟)’은 예의와 오르다(척, 陟)를 합친 뜻으로 각각 ‘왕의 죽음’이란 의미가 됐다. ‘척방(陟方)’도 비슷한 뜻이다.

 ‘용어(龍馭)’라는 말의 용은 임금의 상징이고, ‘어(馭)’는 말을 몰다는 의미다. ‘편안하게 가마에 오르다’는 뜻의 ‘안가(晏駕)’도 있다. 가히 은유의 극치다. 낯설지만 거의 모든 사료(史料)에 적힌 말이다. 연속극에도 자주 나온다.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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