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지구 한바퀴

세계일주 5개월은 내면 성찰의 시간

입력 2013. 12. 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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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12번의 비행, 100여 시간의 버스 이동, 수천 시간의 고민˝”


→경희대 건축학과를 다니던 중 해병대를 지원해 경북 포항 1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전역 나흘 만에 히말라야 곤도고로라(5690m) 등정에 성공,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울진~독도 수영 횡단(240㎞), 아마존 정글 마라톤 완주(222㎞), 미 대륙 자전거 횡단(6000㎞)을 하는 등 도전정신을 끊임없이 발산하는 젊은이다.

 비행기가 1만 피트 상공에서 순항 고도에 접어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세계 일주의 마지막 일지를 작성했다.
 

5개월 만에 그리운 한국으로

2012년 6월 26일. 나는 ‘코너우드먼’이라는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여행하며 돈도 벌어 보자는 생각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불가능 혹은 가능,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까진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대로 소림사 무술학교에 들어갔다. 소림무술학교의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고수가 되기 위해 10년을 운동했지만,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무술 훈련 중 허리를 다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세계 일주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8월 말,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쯤 돼 다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출발했다. 그러나 승마로 영국을 종단하겠다는 계획은 달성할 수 없었다. 준비가 안 된 자에게 주어진 결과는 없었고, 끝없는 좌절 속에서 다행히 영국인 친구 클라슨의 도움으로 두 달 동안 돈 한 푼 안 쓰고 지낼 수 있었다. 여러 가정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모두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고민 속에 살아갔다.

 인생은 선택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사람이 한 번 선택한 삶의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해 보였다. 체코 프라하 성벽에 앉아 여행의 목적을 바꿨다. 뭔가를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슴을 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여행을 이어갔다. 여행 중에 나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어느 일본인 여행작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뒤, 그동안 지루한 일상을 살지 않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항해를 끝마쳤다’라고 썼듯이 사랑 그리고 행복이 삶의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했던 행동을 돌이켜 봤고,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중국-한국-영국-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체코-터키-아랍에미리트-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잠비아-아랍에미리트-태국.

 

신비로운 세상, 사랑할 것이 많다

12번의 비행, 100여 시간의 버스 이동, 수천 시간의 고민. 나와 많은 대화를 했고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인생은 짧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함은 맞지만, 급하게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됐고, 반대로 성장 가능성 역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리카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과 함께하며 참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방콕에서는 비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현지인들을 통해 중독된 것을 끊고, 올바른 습관을 길러야 함과 본질을 잊지 말고 내면을 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5개월간 몇만 ㎞를 오고 가면서 느낀 결론은 머릿속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진정으로 뭘 해야 할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습관을 갖는 것이었다. 습관이 좋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얻었다 하더라도 유지하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얻은 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하며 발전시키느냐였다.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라는 책에서처럼 모든 것은 사실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게 고작 이거야?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게 사실 삶의 전부였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배운 것을 하나씩 실천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시작이 어렵지 그 이후에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을 때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20분 후면 부산 김해공항에 착륙한다. 5개월은 참으로 뜨거운 시간이었다. 처음 떠날 때 나와 약속했던 부분을 지키지 못했지만 속상하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인생은 혼자서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과 삶의 균형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는 것. 세상은 신비로우며, 사랑할 것이 많음을 알았다.

 그동안 나를 믿고 응원해 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나 스스로에게도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2012. 12. 1.

방콕발 부산행 비행기에서…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해공항에서 김포로 향했다. 겨울이었지만 느껴지는 이 따스함은 이곳이 나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친한 형님이 마중 나와 줬다.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나를 반겨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큰절을 올렸다. 집은 변한 게 없었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대로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큰 힘이고 에너지라는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겪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주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나만의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세계 일주를 다녀왔듯이 앞으로도 선택의 기로에서 삶을 개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면서 그 길로 온전히 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어렵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말이다.

 내가 떠나기 전 의형인 오현호 형님께서 나에게 줬던 편지 속 마지막 한 마디가 생각난다. “네가 달려야 남들이 뛸 수가 있어. 반드시 우린 날아야 해! 파이팅!”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그동안 국방일보 ‘열혈청년 이동진의 지구 한 바퀴’와 함께해 주신 장병들과 군 관계자, 그리고 기사를 연재할 수 있게 도와주신 정남철 취재팀장님, 마지막으로 곁에서 가족 이상으로 항상 애써 주신 이승복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동진의 지구 한 바퀴’가 오늘분(63회)을 마지막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립니다. 다음주부터는 해병으로 군 복무를 막 마친 지난 2010년 여름, 이동진 씨가 도전했던 히말라야 등정기, 오지탐사대 지원 방법 그리고 여행 화보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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