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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면을 닦아야 ‘따로 또 같이…’

입력 2013. 11. 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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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산책(39)함께 하기 위해 홀로 서라


최북의 ‘호계삼소도’ 유불선 화합·합일 의미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

마음이 행복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

인생은 남과 더불어 즐겁게 가야 하는 것

 


 

 

 최북(崔北:1738-1786)이 그린 ‘호계삼소도’는 중국 동진(東晋)의 고승 혜원(慧遠:334-416)법사가 지우(知友)를 만난 즐거움을 묘사한 것이다.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30여 년 동안 수행해 온 혜원 법사는 단 한 번도 여산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 와도 동림사 앞 호계(虎溪)라는 시냇물 앞에서 배웅을 했다. 호계는 혜원법사가 세상과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관계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유학자요 시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과 도사(道士)인 육수정(陸修靜, 406-477)이 혜원법사를 찾아왔다. 평소 세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통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얼마나 재미있었던 지 세 사람은 호계를 건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 삼매에 빠져 혜원 선사 스스로가 정한 ‘관계의 마지노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 때 혜원법사를 지켜주는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스님이 정한 원칙을 파계했다는 것을 알고 세 사람이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제목이 ‘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라는 뜻으로 ‘호계삼소’이다.

 최북은 이 그림에서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최대한 구도를 간략하게 잡았다. 인물이 중심인 만큼 주변환경은 얌전하다. 다리 한 복판에서 이야기에 취한 세 사람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림을 그린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육수정이 두 손을 움직여가며 신나게 얘기하고 있다. 혜원법사와 도연명은 육수정에게 감전된 듯 정신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얼핏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담담한 색깔로 풀어낸 인물 표현이 오랜 세월동안 편안하게 이어져 온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이 이야기는 유불선(儒佛仙)의 화합과 합일의 의미로 회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됐다. 그림 속에서 육수정은 두 손을 휘저으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혜원 선사와 도연명은 껄껄 웃으며 친구의 얘기에 리액션을 취하고 있다. 어느 곳을 걷고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친구가 내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해 주는 지 이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현재 놓인 그 상태 자체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그래야 ‘따로 또 같이’갈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유이다. 그리고 남과 더불어 즐겁게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조정육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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