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 속 전쟁이야기

핵미사일 발사 명령에 함장 대 부장 간 갈등 표현

입력 2013. 08. 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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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타이드


함장 자신의 오판 시인 책임지는 군인다운 모습 보여줘

 

핵잠수함 내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크림슨타이드의 포스터.

 

핵무기의 등장 이후 인류는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의해 절멸(絶滅)당할지도 모른다는 핵전쟁의 공포를 느껴왔다. 만일 핵을 보유한 비이성적 집단이 핵무기를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다. 과연 그러한 상황이 현실로 발생한다면 어떠할 것인가? 토니 스콧 감독의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 1995)’는 핵을 보유한 비이성적 집단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가상 상황을 설정한다. 그리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출항한 핵무기 탑재 핵잠수함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과연 핵미사일이 발사돼 핵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떨린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라첸코 세력이 핵미사일 기지를 포함한 러시아 영토 일부를 장악해, 핵무기로 미 본토를 위협한다. 미국은 라첸코가 핵미사일 암호를 수중에 넣기 전에 그의 전쟁 의지를 꺾으려고 했다. 이에 램지 함장(진 핵크만 분)과 헌터 부장(덴젤 워싱턴 분)이 이끄는 핵잠수함 앨라배마호가 러시아 핵미사일 기지를 향해 출항한다.

 영화 속 램지 함장과 헌터 부장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견해 차이는 이후 두 사람에게 발생하는 대립의 복선이 된다. 먼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램지 함장은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유명한 구절인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를 인용하며 전쟁은 정치의 수단임을 강조한다. 이는 국가가 명령하면 군인으로서 당연히 핵무기를 발사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헌터 부장은 핵 등장 이후 출현한 핵전쟁에서는 전쟁의 목적 자체의 의미가 사라졌다며 조심스레 반박한다. 한 국가나 정치적 집단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데, 핵전쟁에서는 싸우는 두 집단 모두 공멸해버리기에 전쟁의 목적에 의미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헌터 부장은 자칫 인류 절멸로 이어질 수 있는 핵전쟁의 위험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핵무기 사용에 신중한 생각을 지녔다.

 또 하나는 잠수함에 화재가 발생한 상황 속에서 램지 함장이 미사일 발사 훈련 명령을 내리자 헌터 부장이 이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화재를 채 진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내린 훈련 지시는 부당한 조치였다는 헌터 부장의 의견에 대해, 램지 함장은 실제 전투에서 발생할 마찰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소 희희낙락거리며 하는 훈련은 의미 없다고 못 박는다. 오히려 혼란한 상황 속에서 훈련해야만 실제 전투에서 그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잠수함 내에서 전 대원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일원화된 명령체계가 필요하며, 다시는 본인의 명령에 이견을 달지 말라는 램지 함장이 헌터 부장에게 하는 경고 역시 군 명령체계상 일리가 있다.

 영화의 중반부에는 마침내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앨라배마호에 하달된다. 이에 앨라배마호는 핵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때마침 상대 잠수함과 조우하게 되고, 어뢰 공격의 여파로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상부에서 하달된 새로운 명령의 일부만이 접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새로운 명령의 내용이 불분명한 혼란 속에서 램지 함장은 기존 명령에 따라 핵미사일을 발사시키려 했다. 이에 부장은 다시 하달된 불분명한 명령을 확인한 후에 발사해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곧 라첸코 군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램지 함장은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했고, 헌터 부장은 함장과 부장이 함께 동의해야만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그 명령을 거부했다. 잠수함 안에서는 함장과 부장의 대결로 인해 내분에 휩싸이게 되며, 그 와중에 미사일 발사는 늦춰진다. 결국 통신기기가 수리되고 최종 명령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함장과 부장의 신념과 리더십의 충돌에 의해 발생한 잠수함 내부의 갈등은 매우 흥미진진하며, 이 부분만으로도 군인이라면 꼭 한번 봐야 할 명화로 추천하고 싶다. 최종 명령은 핵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헌터 부장의 결정이 옳았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의 군사법원 판결처럼 함장과 부장은 둘 다 옳았고 둘 다 틀렸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헌터 부장의 판단이 결과론적으로 잘못됐더라면 그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고 볼 수 있다. 군인은 자신의 신념과 판단이 국가 및 조직 목표 달성에 합당한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전장의 마찰로 인해 여러 모순적인 경우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실제 전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램지 함장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헌터 부장에게 함장 자리를 넘긴 채 군문을 떠난다. 하지만 자신의 오판을 시인하고 이를 책임지는 군인다운 멋진 모습을 보였기에, 그의 뒷모습은 결코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심호섭 대위·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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