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지원국열전

휴전 이후에도 남아 대한민국 의료발전 기여

김철환

입력 2013. 07. 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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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웨덴


 스웨덴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으로부터 침략당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의료지원을 선택했다. 전쟁 기간에 스웨덴 의료제대는 주요 후방병원의 역할을 수행했고, 휴전이 이뤄진 후에도 대한민국에 남아 질병 퇴치와 의료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 16개 참전지원국에 이어 스웨덴부터 5개 의료지원국의 활동을 소개한다.

 스웨덴은 6·25전쟁 기간 연인원 162명의 의료진과 지원세력을 대한민국에 보냈다.

 대한민국 지원을 위한 유엔의 권고에 따라 스웨덴은 애초에 적십자를 중심으로 1개 야전병원단을 파견해 200병상 규모의 이동야전병원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950년 9월 28일 부산 도착 즈음,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총반격 등 아군의 공세적인 작전이 이어지면서 부상자가 많이 늘어나자 미 제8군의 계획 변경에 따라 후방병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부산상업고등학교 건물에 자리 잡은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내과와 외과·소아과·치과·안과·방사선과·수술실·연구실·조제실을 갖춘 400병상 규모의 의료시설을 꾸렸다. 의료진은 일반의사 10명과 치과의사 1명, 간호사 30명으로 구성됐다.

 병원이 문을 열자 반격작전으로 급증한 부상자들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유엔군이 완전한 승기를 잡고 북한군을 한만 국경선까지 몰아붙이면서 자연히 부상자도 줄어들었다. 소강상태도 잠시, 1950년 연말 중공군과 혹한의 동장군이라는 새로운 적이 출현하면서 병원을 찾는 부상자와 동상환자가 다시 빠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는 1951년 중순까지 이어지다가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병원은 여유를 찾게 됐다. 이 시점부터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유엔군 전상자들의 치료와 함께 민간인 구호와 진료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1951년 6월부터 이듬해까지 1년 동안 스웨덴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받은 민간인은 입원환자가 900여 명, 방사선과 검진 환자 7800명, 촬영한 방사선 사진은 1만 매에 이른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민간인 환자 급증을 고려해 1952년 5월 민간인을 위한 별도의 진료소를 개소했다.


 


 스웨덴 본국에서는 대한민국에 파견된 스웨덴 적십자병원의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최신 의료장비와 의약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줬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구호품을 민간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며, 스웨덴의 저명한 의사들이 자진 방한해 의료봉사를 베푸는 등 국가적 규모의 도움의 손길을 이어갔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재건지원을 위해 의료지원과 민간구호업무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1954년부터 민간인 진료에 주력하게 된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대한민국에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부산시내 전역에 걸친 BCG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또 스웨덴 간호사들은 여가시간에 아동복을 지어 피란민들에게 선물해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의료지원국 가운데 가장 긴 기간인 6년 6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르고 1957년 4월 철수했다. 이 기간 스웨덴 적십자병원의 활약으로 약 2만5000명 이상의 수많은 유엔군, 국군 장병과 민간인들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철수 이후에도 스웨덴은 같은 의료지원국인 덴마크·노르웨이와 함께 훗날 국립의료원의 모태가 되는 스칸디나비안 교육병원을 세워 한국 의료진들에게 선진 의술을 전수하는 등 대한민국 의료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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