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날씨와 인문학

날씨들의 챔프戰, 가뭄 앞에 장사 없네

입력 2013. 06. 25   16:41
0 댓글

中 신화 ‘치우천황과 가뭄의 싸움’ <끝>


비와 번개 앞세운 치우 황제의 딸 한발에 무릎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단군 이래 대한민국 국민을 가장 유쾌하게 통합하는 쾌거였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붉은악마가 돼 ‘대~한민국’을 연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 응원단이었던 붉은악마가 사용한 상징 문양이 ‘치우천황’이었다. 상암 경기장 스탠드에 펼쳐져 있던 치우의 붉은 초상화는 월드컵 우승의 확신이 솟아날 정도로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이때의 주인공이었던 치우는 여름을 다스리는 염제의 아들이었다. 중국의 역사서 ‘예기’와 ‘여씨춘추’에 의하면 하늘에 다섯 명의 임금이 있었다. 봄을 다스리는 임금은 복희(伏羲), 여름을 다스리는 임금은 염제(炎帝), 가을은 소호(少昊), 겨울은 전욱(?頊)이며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황제(黃帝)였다. 치우천왕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에서 군신(軍神)으로 섬긴다.

 중국 신화에서 날씨를 이용해 벌인 최초의 전쟁이 치우와 황제(黃帝)의 전쟁이다. 여름을 다스리는 임금 염제가 황제에게 도전했다 패해 죽자 아들 치우가 벌인 복수전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가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치우는 복수를 다짐하며 남방의 묘족과 황제에게 반감을 품은 신(神)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치우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황제는 피 흘리는 싸움을 피하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던 치우는 듣지 않았다. 복수심 외에도 강한 군대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양측의 군대가 들판에서 맞붙었을 때, 갑자기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제의 군대를 첩첩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안개작전은 염초라는 풀을 태워 나오는 연기로 사방을 뿌옇게 만드는 치우만의 비책이었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갯속에서 치우의 군대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얼이 빠져있는 황제의 군대를 수숫단 베듯 쉽게 베어 나갔다. 황제는 부하들이 마련해준 지남거(指南)를 타고 간신히 도망을 쳤다.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컸지만 날씨에는 날씨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황제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룡(神龍)을 불러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신룡이 구름을 모아 비를 내리려는 순간, 치우는 바람과 비를 불러 신룡보다 더 큰 비바람을 만들어 냈다. 치우란 ‘우레와 비를 크게 만들어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다.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황제군을 내려치는 벼락은 실로 위력적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바람까지 진중으로 몰아치자 황제의 군대는 또다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중앙의 권력을 치우에게 넘겨줘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한 신하가 나서서 치우를 이길 수 있는 비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맑으면 비를 내릴 수도 천둥·번개를 칠 수도 없으니, 비와 번개를 이길 수 있는 날씨는 맑은 하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맑고 무더운 날씨로 가뭄을 관장하는 황제의 딸을 전장에 내보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신하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긴 황제는 마지막 방법으로 딸 한발(旱魃:가뭄)을 전쟁터에 내보냈다. 그녀가 선두에 서자 거칠게 몰아치던 비바람과 천둥이 그치고 태양이 이글거리고 땅에는 가뭄이 들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황제군은 치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치우천황 신화를 보면 기상학의 원리를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치우는 독특한 염초를 태워 나오는 연기를 이용해 안개를 만들었는데, 연기미립자들은 안개를 만드는 핵이 되므로 기상학적으로 흥미롭다. 또 황제가 비구름을 몰아왔을 때 치우가 사용한 방법은 강한 바람으로 비구름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비구름이야 바람에 좌우되는 것이니 이 또한 상상력이 재미있지 않은가? 치우의 가장 큰 무기인 강한 우레와 비를 이길 방법은 가뭄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상상력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날씨의 가장 큰 재앙이 가뭄이었다. 태풍도 홍수도 지진도 아니었다. 가뭄이 들면 몇백만 명씩 죽어갔다. 가뭄은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치우와의 전쟁에서 가뭄신 발을 내세운 것은 중국인들의 삶이 신화로 표출된 좋은 예다.

[TIP]최악의 재앙은 가뭄

치우 황제를 패배시킨 가뭄은 역사상 기록된 기상재앙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준 기상현상이다. 그래서일까? 가뭄의 신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들 때문에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비의 신을 중국의 남쪽지방에, 가뭄의 신 발을 북부지방의 사막지대에 살게 했다고 신화는 전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가 막힌 기상학적 이론이 숨어 있다. 중국의 북부 사막지대는 고위도 고압대 지역에 속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다. 전 세계의 사막이 거의 이 위도대에 위치할 정도로 가문 특성을 보인다. 반대로 신용이 사는 중국 남부지방은 몬순과 함께 해양과 육지의 경계에서 불안정 기층이 자주 형성돼 연중 많은 비가 내린다. 기상학적 특성을 신화에 접목한 그들의 지혜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