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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 편입 도미노 전염병 선페스트 창궐 앵글로색슨 ‘어부지리’ ‘영어 = 세계어’ 열다

입력 2013. 06. 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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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의 역사를 바꾼 날씨의 힘


 켈트-앵글로색슨족 100년 전쟁

선페스트의 켈트 상륙으로 결말

 

 

 

앵글로색슨 족.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김춘수 씨의 ‘꽃’ 중에서)

 시의 첫 연은 명명 이전의 상태다. 인식되지 않은 무의미한 존재를 뜻한다. 둘째 연으로 가면서 의미 부여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모두 의미 부여의 소망, 본질 부여에 대한 근원적 갈망을 한다. 즉 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은 ‘나’다. 불러준다는 것은 언어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언어를 통해 인정하고 의미와 존재를 부여받는다.

 언어학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처음에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기원의 언어가 있다는 가정에 모두 동의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에서 유래했다. 신이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고 사람들이 뭉쳐 신에게 반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구 위에 흩어놓고 언어를 여러 개로 만들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본질을 담은 이 언어는 히브리어일 거라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독일 학자들이 최초의 언어가 게르만어라고 말하자 프랑스 학자들은 갈리아어라고 반박했다. 스탈린 치하 소련의 공식 언어학자였던 니콜라이 야코블레비치 마르는 단일 언어는 우리가 현재 쓰는 모든 단어의 조상격인 네 개의 단음절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최고의 언어는 무엇일까? 전 세계적으로 영어의 힘이 확장되면서 영어는 세계어가 돼 버렸다. 영어가 세계어로 된 밑바탕에는 기후와 날씨가 존재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이며, 영어는 현재의 영국 본토인 브리튼 섬에 살았던 앵글로색슨 족의 언어다. 그런데 영국에 최초로 살았던 원주민은 잉글랜드 사람이 아니라 켈트족이었다. 켈트족은 449년 영국 본토를 침략해온 앵글로색슨 족 때문에 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몇십 년에 걸친 앵글로색슨 족의 공격에 켈트족은 서쪽의 웨일스와 북쪽의 스코틀랜드로 피신했다. 켈트족은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지중해 사람들을 교역 상대로 택했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폐허화하고 서북진하던 선페스트가 교역로를 따라 영국의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 상륙한 것이다. 무역선의 화물칸에 숨어 있던 쥐들에 의해 선페스트가 상륙했고 그 결과 주로 지중해 사람들과 교역을 하던 서쪽의 켈트족이 가장 먼저 선페스트에 희생됐다. 반면에 동쪽에 있었으며 지중해와 교역을 하지 않은 앵글로색슨 족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비록 앵글로색슨 족에 밀려 서쪽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험준한 지형을 바탕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었던 역학관계가 깨져버린 것이다. 켈트족의 기사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앵글로색슨 족의 기사들이 약해진 켈트 지역을 치고 들어가 마침내 그 지역이 식민지로 삼게 된 것이다. 약 100년을 끌어온 켈트족과 앵글로색슨 족의 전쟁은 허무하게도 선페스트 때문에 결정지어진 것이다. 이것이 대영제국의 시초였으며 영어를 사용하던 앵글로색슨 족은 마침내 아일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점령했고, 그 이후의 역사에서 북아메리카, 카리브 해, 인도, 호주, 미합중국에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키스는 선페스트가 켈트족과 앵글로색슨 족의 전쟁 승패와 그 이후의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이렇게 분석했다.

 “수 세기에 걸쳐 도미노처럼 여러 국가가 줄줄이 대영제국에 편입된 배경에는 6세기의 기후와 전염병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 이후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기후와 전염병이었던 셈이다.”

 물론 당연히 언어학의 역사도 바뀌었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TIP-소수언어는 보존돼야 한다

 영어의 왕성과 더불어 약한 나라와 약한 민족의 언어는 사라지고 있다. 한 언어의 소멸은 언제나 비극으로 남는다. 그것은 기나긴 진화의 산물인 복잡한 구조가 사라지는 일이며, 하나의 문화와 모든 구전문학, 전통, 전설의 상실을 의미한다.

 문화인류역사학적으로 언어들은 보존되고 발전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후진국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투표를 한다. 이제 영어를 말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기왕에 영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시대에 영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겁낼 필요도 없다. 미래는 다언어 사용의 시대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언어를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민족이라는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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