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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간 군사우편들

송현숙 기사입력 2013. 05. 09   14:10 최종수정 2019. 09. 22   14:38


 ‘편지를 불태우면 개인의 역사도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소소한 내용이라도 그 속에는 한 개인의 역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군사우편은 더욱 그렇다. 전쟁터·파병지같이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작성한 경우가 많다 보니 그 가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에 있는 ‘호국의 전당’ 전쟁기념관에 가면 모두 5통의 군사우편을 만날 수 있다. “전시품 가운데 수기나 일기는 참전자 본인이 직접 쓴 것이어서 기증하는 경우가 많지만, 군사우편은 편지를 받은 사람이 기증해야 세상의 빛을 보는 까닭에 수기나 일기보다는 수량이 적다”라는 것이 전쟁기념관 측의 설명.

가치 있는 사료(史料)이기 이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게 절박한 감정을 편지지 위에 쏟아낸 군사우편은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부치지 못한 어머니 전 상서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중략)… 상추쌈과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가 먹고 싶습니다.”

 1950년 무더웠던 여름, 포항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부치지 못한 어머니 전 상서’의 일부분이다. 기념관 2층 ‘6·25전쟁실 Ⅰ’ 한쪽 벽면 목판에 새겨진 편지글 전문(全文)에는 당시 펜 대신 총을 들고 참혹한 전쟁터로 나섰던 열일곱 소년병사의 참된 용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어린 나이에 극복하기 어려웠을 전장 공포, 그럼에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의 일념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고인은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이 편지를 쓴 다음날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전후세대에게 나라와 평화의 소중함을 말없이 가르치는 지표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현해탄 건너온 재일학도의용군에게


 “今月(금월) 20일에 君(군)의 負傷(부상)을 當(당)하여 第(제)31 陸軍病院(육군병원)에 入院(입원) 加療(가료) 中(중)이라는 便紙(편지)를 받고 놀래였네. 가지도 못하고 不得已(부득이) 書狀(서장)으로 回答(회답)하오니 부디 용서하시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재일(在日)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부상당해 제31육군병원에 입원 중이던 정협섭 씨에게 부산 충무동에 살고 있던 지인 정성문 씨가 보내온 위문편지다. 현해탄을 건너 참전한 600여 명 재일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되새기게 하는 이 편지는 정협섭 씨가 1989년 전쟁기념관에 기증한 것으로 ‘6·25전쟁실 Ⅰ’ 학도의용군 코너에서 볼 수 있다.


세계 평화 이바지하는 내 가족!



 기념관 3층 ‘해외파병관’에는 세계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주고받았던 3통의 편지가 전시돼 있다.

 먼저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고(故) 이인호 소령이 가족과 주고받았던 편지가 유품과 함께 전시돼 있다. 고인은 1966년 7월 청룡부대 정보장교로 베트남에 파병돼 투이호아 지역 일대에서 적 은거지에 대한 수색작전을 펼치던 중 동굴에 숨어 있던 적이 수류탄으로 공격해 오자 이를 몸으로 덮쳐 장렬히 전사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다. 정부는 살신성인한 고인에게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파병(파견) 장병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루지야에 군 옵서버(감시단) 요원으로 파견된 젊은 군인 아빠에게 여섯 살 난 딸이 여덟 칸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 써 보낸 편지와 서부사하라에 의료지원단으로 파견된 여군장교가 고국의 부모님께 현지 소식, 자신의 임무와 함께 안부를 써서 보낸 군사우편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한국의 위상을 웅변한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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