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노래의보석함

<52·끝>애국가

입력 2012. 12. 2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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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나라사랑 길이 울려 퍼지길


애국가에 평생을 바친 안익태, 박 前 대통령과도 교감 18대 대통령 취임식 때 역사에 남을 감동적 연주 기대

오늘 노래의 보석함은 우리가 가장 자주 듣고 부르며 사랑해야 할 ‘애국가’를 골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천할 만한 해석을 찾지 못해 동영상이나 음성파일 주소를 드릴 수 없어 독자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인터넷을 접속하면 ‘애국가’ 동영상이나 음성파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마음에 와 닿는 해석을 만나기 힘든 것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일까?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 국민이 함께 부르는 21세기형 ‘애국가’, 역사에 길이 남을 ‘애국가’가 지구촌에 널리 울려 퍼지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노래의 보석함 최종회 제52화를 열어 본다.


▶ 박정희와 안익태

1962년 1월 5일 하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집무실. 그곳에 박정희 의장과 마주 앉은 음악가가 있었다. ‘애국가’의 작곡자이자 세계적인 지휘자 안익태(1906~1965)였다. 30분 간 예방 후, 의장실을 나온 안익태는 기다리던 출입기자들에게 환담 내용을 소개했다.

 “박 장군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만나 보니 여러분들보다 더 서민적이고 착실한 사람 같아요. 나는 세계 각국에서 지휘할 때 쓰던 지휘봉과 내 작품 <한국 환상곡(Korea Fantasy)> 레코드를 기념품으로 선사하고 말했습니다. ‘이 지휘봉으로 국민을 잘 지휘해 주십시오. 국민은 오케스트라 멤버입니다. 세계에는 나쁜 오케스트라는 별로 없지만, 나쁜 지휘자는 많습니다.’ 그랬더니 박 장군은 ‘당신은 경험이 많은 지휘자니까 그 지휘법을 가끔 와서 가르쳐주시오’라고 합디다. 박 장군 그분, 참 솔직하고 재미있는 분이로구나 싶었어요. 음악예술에도 관심이 대단해요.”(김경래 저 <코리아 환상곡>, 1966년, 246∼247쪽)

 그리고 4개월 후인 1962년 5월 1일부터 16일까지 안익태가 꿈꿔 왔던 <제1회 국제음악제> 겸 <5ㆍ16혁명 돌맞이 축하음악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경비는 우리 정부가 부담했지만 외국 음악가 초청을 비롯한 기획은 안익태의 작품이었다.

 음악제에는 성악가 휘쉬(노래의 보석함 <26> 참조), 하프 연주자 자바레타, 첼리스트 나바라, 바이올리니스트 오드노포소프 등 세계 정상급 음악가 26명이 참가했다. 국내에서는 KBS교향악단 및 합창단, 서울시립합창단, 서울시 음악대학 연합합창단, 국립가극단 및 국악원 연주자 등이 대거 참가했다. 특히 5월 2일 안익태의 지휘로 총 650명이 출연한 <교향악의 밤>이 개최됐으며, 5월 7일과 9일에는 남장(男裝)을 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남편을 구출하는 여성의 정의감과 용기를 다룬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노래의 보석함 <22> 참조)도 선보였다.

 ▶ 안익태와 대한민국 군악대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안익태는 음악가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미국·독일에서 유학한 후, 유럽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했으며, 말년에는 스페인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보듯이 그는 생각과 언행이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났으며, 고상한 인격을 겸비한 위대한 예술가로 후세에 남고 싶어 했다.

 제1회 음악제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안익태는 행사를 매년 추진코자 했으며, 열악한 우리 정부의 예산 형편과 일부 국내 음악가들의 저항에 직면했지만 어렵사리 제3회 음악제까지 꾸려갔다. 특히 제3회 음악제의 개최는 육·해·공·해병·육사 군악대가 결정적으로 기여를 했다. 5월 19일 개막행사에서 우리 군악대는 한국전 전몰용사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레퀴엠을 미8군 군악대와 합동으로 연주했으며, 5월 26일에는 <한국 환상곡>, 베토벤 제5번 교향곡 <운명>을 현악기 없이 연주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안익태에게 우리 군악대는 고마운 친구이자 후원자였다.

 안익태는 1965년 제4회 음악제를 위해서 노력했으나 무산됐고,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 제18대 대통령 취임식과 애국가

작곡한 작품이 많지 않았던 안익태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지휘자였으나, 우리에게는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바로 ‘애국가’와 <한국 환상곡>이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애국가’는 1935년 11월에 작곡됐고,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야만 했던 한국 선수들과 안익태가 처음 불렀다고 한다.

 <한국 환상곡>은 유구한 우리 역사와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미래의 영광을 염원하는 내용이며, ‘애국가’ 합창으로 끝난다. 안익태의 지휘로 1938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된 이 곡은 이후 여러 번 수정돼 세계 각국에서 수없이 연주됐다. 그때마다 안익태는 <한국 환상곡>의 ‘애국가’ 합창을 꼭 우리말로 부르도록 했으며 심지어 일본에서도 한국말로 연주됐다.

 이는 안익태가 ‘애국가’에 평생을 바친 음악가라고 보아도 좋을 결정적인 증표다. 그런데도 ‘애국가’가 표절이니 새로운 애국가가 제정돼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온 우리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무용한 논의가 아니라 ‘애국가’를 제대로 불러서 조국을 사랑하고 세계에 알린 안익태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애국가’를 연주해 보는 것이다.

 ‘애국가’는 기악연주로는 근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성악 특히 합창 위주로 연주할 때는 자칫 처지게 되고 듣는 이를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경일 등 공식 행사에서 일반인들이 애국가를 부를 때는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 직후 임시정부가 발간한 악보처럼 ‘애국가’를 독창(4절의 본 가사)과 합창(후렴) 부분으로 나누고, 악보에는 ‘andante(느리게)’로 됐지만 ‘느리지 않고 장엄하며 힘차게’ 부를 수는 없을까?

또한 오케스트라가 청중으로 하여금 독창자와 합창단이 부르는 가사를 또렷하고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강약을 조절해 반주할 수는 없을까?

 적절한 사례는 아니지만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인들이 비공식 국가로 애창해 온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Rule Britannia!)’를 세계 3대 바리톤의 하나로 평가받는 브린 터펠(Bryn Terfel, 1965~)이 선창하고 후렴을 합창단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자.

-http://www.youtube.com/watch?v=qR_bJFpilu8

 위 동영상보다 훨씬 감동적인 21세기형 ‘애국가’, 역사에 길이 남을 ‘애국가’가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울려 퍼지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렇게 재해석된 21세기형 ‘애국가’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세계인들부터 사랑과 감탄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독립민주국가 수립 후 237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한 미국에 비해, 65년 만에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구촌에 널리 알리자!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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