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보병장비이야기

<89>정글용 응급처치 키트

입력 2012. 12. 1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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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육군, 제2차 세계대전 중 ‘첫 선’


곤충 퇴치제·발 치료제 등 정글 생존 필수품

1967년부터 쓰인 나일론제 개인 응급처치 키트(US 글자가 찍힌 주머니).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67년까지 쓰인미군의 M2 정글용 응급처치키트. 필자제공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은 정글 지역을 위한 개인용 응급처치 키트인 M1 정글용 응급처치 키트를 따로 내놨다. 태평양 지역에서의 전투는 기후가 비교적 온후하고 자연적 위협이 크지 않던 유럽 지역과 달리 가혹한 정글 지역에서 치러졌다. 이 때문에 상당수 부상자가 전투 자체보다 자연환경에 의한 부상이나 질병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과 기타 지역에서 지급된 응급처치 키트가 단순한 압박붕대인 칼라일 붕대뿐이었던 데 반해 M1 정글용 키트는 정글에서의 실전 경험을 반영해 내용물이 풍부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정글에서는 총상이나 파편상 외에도 열병이나 각종 식물에 의한 찰과상, 세균에 의한 감염 등 수많은 위협이 존재했기에 필요한 응급 의료용품의 종류도 많았던 것이다.

 M1 정글용 키트에는 칼라일 붕대에 곤충 퇴치제·발 치료제·아스피린·정수제 등 정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 들어 있었으며 1942년부터 1944년까지의 제식이었다. 1944년에 M1은 퇴역하지만 이것은 키트의 필요성이 없어져서가 아니었다. M1의 두루마리식 주머니는 휴대와 사용이 모두 불편했고, 이 때문에 좀 더 휴대가 편하고 튼튼한 M2 정글용 응급처치 키트가 나온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M2 키트는 보편적인 장비였으나 유럽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미 육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대전 뒤에도 한국·베트남 등 미국·유럽에 비해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하고 풍토병이 우려되던 환경에서 작전하는 병력에는 M2가 지급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특히 이런 지역에서의 작전 기회가 많던 미 해병대는 M2를 꾸준히 사용했고 M2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IFAK(Individual First Aid Kit : 개인 응급처치 키트)도 계속 애용됐다.

 IFAK는 M2 키트를 개량해 1967년에 등장한 것이다. 모양과 크기는 M2와 비슷하고 내부에는 압박붕대 외에도 안대·정수제·소독제·발 부상 방지용 파우더·점착붕대 등 8종의 의료용품이 수납됐다. 단 이들 내용물은 미리 포장돼 출하되는 것이 아니라 빈 주머니를 지급받으면 일선 부대에서 내용물을 필요에 맞춰 채워넣게 돼 있었다. 미 육군과 공군에서는 주로 위생병들이 이용했으며 차량이나 선박 등에 거치하는 응급처치 키트로도 활용했다.

 일반 육군 병사들은 2차 대전 중의 칼라일 붕대와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압박붕대만을 지급받았지만, 해병대만큼은 이 IFAK를 최대한 개인 병사들에게까지 지급하려 애썼다.

사실 IFAK는 휴대성이 비교적 나쁘다.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에도 중남미 등 열대 지역에서 작전할 기회가 많은 데다 자체 위생병이 없어(해군에서 파견) 자칫 원활한 의료 지원이 어려울 수 있는 해병대로서는 병사 개인의 응급처치 능력이 높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미 해병대 역시 IFAK가 아닌 압박붕대를 표준 응급처치 키트로 표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02년까지도 미군의 야전교범은 미 육군-해병대 공통이자 유일의 개인용 야전 응급 키트로 압박붕대(근본은 2차 대전 당시와 큰 차이가 없는)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미군에도 현실과 규정 사이에 괴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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