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노래의보석함

<48>‘그네’와 ‘파랑새’

입력 2012. 11. 3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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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고운 자태가 그려지는 서정적 멜로디


 그네-단순한 멜로디와 온음계로 우리 민요 박자 변용해 파랑새-소외된 이웃에 직접 찾아가 큰 감동 선사했던 곡

오늘 노래의 보석함은 금수현의 가곡 ‘그네’(김말봉 작사)와 ‘파랑새’(한하운 작사)를 감상하기로 한다. ‘그네’는 이화여대 음악대학장을 지내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석좌 교수인 이규도의 노래를 추천한다.
 -http://www.krsong.com/skin/board/kplayer_audio/playerskin/kplayer/kplayer_audio.php? bo_table=01_1&selected=15089,

 ‘파랑새’는 천부적인 미성의 소유자이자, 1970년대 캐나다 국립오페라단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팽재유의 해석을 추천한다.
 -http://www.krsong.com/skin/board/kplayer_audio/playerskin/kplayer/kplayer_audio.php?bo_table=01_1&selected=15095,


▶신여성 김말봉의 시 ‘그네’

20세기 전반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한국의 여인들이 얼마나 많을까마는 김말봉(1901~1961)처럼 두 남편과 사별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살면서 왕성한 집필 활동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여권신장 등 사회활동을 위해 헌신한 신여성이자 여류문인도 드물 것이다.

 지난달 그녀의 문제작이자 대표작인 <찔레꽃>이 다시 독자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후, 1939년 단행본으로 발간됐던 이 소설은 그녀에게 통속소설 혹은 대중소설 작가라는 그리 명예롭지 못한 평가를 안겨줬었다. 그러나 작가는 삶을 가식 없이 묘사해야 하며, 소수의 지성인이 아닌 대중을 위해 작품을 써야 한다는 선구적인 주장을 폈던 그녀에게 그런 평가는 오히려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찔레꽃>은 베스트셀러이자 파격적인 대중문화현상의 촉매제였다. 즉, 일제강점기를 사는 우리 민족의 삶이 토속적인 언어로 고스란히 표출된 김말봉의 <찔레꽃>은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1891)보다 우리에게 훨씬 소중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특히 김말봉은 우리 예술가곡 중 가장 독특하고 정감어린 노랫말을 지닌 ‘그네’라는 곡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대지)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주로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에 매어진 그네놀이는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의 대표적인 여성 놀이였으며, 한국여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던 멋진 매개체였다. 단오와 추석 전후에 널리 성행했던 그네뛰기는 그와 관련된 민요를 많이 남겼으며, 김말봉의 ‘그네’는 전래민요의 현대적인 시적 변용이자, 여성의 예리한 지성과 관찰력에 의해서 새 옷이 입혀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금수현 예술가곡 ‘그네’

김말봉의 시 ‘그네’가 우리 민족의 뇌리에 새겨지게 된 계기는 그녀의 사위이자 작곡가인 금수현(1919~1992)의 의해 곡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가곡의 작곡 배경에 관해 금수현의 흥미로운 진술을 들어보자.

 “1946년 봄 어느 일요일, 점심에 장모가 놀러 오셔서 오래전에 써둔 자작시를 조용히 읊으시더라고요. 바로 ‘그네’였습니다. 원래 시는 3절이었는데 장모는 둘째 절을 잊어버리고 첫째와 셋째 절만 낭송하셨는데, 시를 듣는 순간 그네 타는 여인이 떠오르며 멜로디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겁니다. 그래서 곧 오선지에 옮기고 장모 앞에서 직접 피아노로 반주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이향숙 저 <가곡의 고향>의 고향 137쪽)



 참고로 부산상고와 도쿄음악대학을 졸업한 금수현은 1942년 동래여고 음악교사 시절 김말봉의 집에 놀러갔다가 인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녀의 딸 사진을 받아보았고, 곧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아무튼 즉흥적으로 작곡된 가곡 ‘그네’는 단순한 멜로디와 온음계만을 사용하면서도 우리 민요가 지닌 박자를 변용시킨 8분의 9박자의 리듬을 통해 서정적인 정서를 탁월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곡은 묘하게도 듣는 이로 하여금 실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경쾌하고 상큼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한국 음악계의 기인 금수현

 금수현은 효율적인 작곡가였다. 남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네’ ‘파랑새’ 등 대중에게 사랑받는 곡들을 작곡했으니 그렇다. 또한 그는 음악가로서는 보기 드문 기인이었다. 1977년 그가 집필한 <음악 멋말>은 서양음악가(작곡가ㆍ연주자 포함)의 삶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일화 500개를 모은 책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 그는 “일화집이라는 일본 냄새가 나는 말보다 위트가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멋말’을 택했다”며, 이 단어가 한글사전에 오를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금수현의 한글 사랑은 자신의 성 ‘김()’을 ‘금’으로 바꾸고,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하나인 금난새(나는 새, 1947~)를 비롯한 자녀들의 이름도 모두 한글로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문교부에 근무하면서는 음악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기여했던 인물이다.

 한편 <음악 멋말>의 말미에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엮은이 자백’이라는 재미있는 자기소개가 등장한다. “농가의 아이-보통학교 학생-상업학교 학생-음악학교 학생-오페라 단원-건달-여학교 음악 교사-(광복)-여학교 교감-극장장-사범학교 교감-여학교 교장-남학교 교장-문교부 편수관-이사관 등등” “연애결혼을 원했는데, 1주일 만에 결혼해야 했다” “목수 없이도 집을 지을 줄 안다” “탁구부 주장인데도 우승을 못해 봤다” “수영은 내 나이 윗사람 중에 제일 오래할 수 있다” “생사일: 1919.7.22~2008.7.21” 등이 그것이다.

 금수현은 비록 희망대로 아흔 살을 살지 못했다. 그러나 작곡 이외에 음악교과서 및 <표준 음악사전> 등을 편찬하고, 1968년 영필하모니를 창단해 젊은이들을 위한 교향악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1970년부터는 <월간음악>을 발간해 대중을 위한 음악보급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아울러 탁월한 유머 감각과 남다른 친화력의 소유자였던 그가 당시 음악가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큰 기둥역할을 했었다는 일화를 작곡가 조념(1922~2008)은 아래와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금수현 선생이 <월간음악>을 운영할 때 음악관련 기고를 많이 했어요. 그때가 참 좋았지요. 1년에 몇 차례 선생이 계신 정릉 집에 모이곤 했는데, 그 수가 100명이 넘었어요. 선생이 세상 떠나고 나서는 그런 모임이 없습니다.”

 금수현이 ‘그네’만큼 아꼈던 ‘파랑새’(1960년 작곡)라는 곡이 있다. 나병환자며 시인이던 한하운(1920~1975)의 시 ‘파랑새’(1949년 발표)에 금수현이 곡을 붙인 이 가곡은 1977년 소록도 국립나병원에서의 위문연주를 통해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당시 사회자가 금수현이었고, 지휘자는 아들 금노상(1953~)이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금난새의 활동을 포함해 그의 가족이 한국 음악의 대중화와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해 오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증표(證票)의 하나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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