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노래의보석함

<47>‘보았네, 한 소년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과 ‘한 송이 들장미’

입력 2012. 11. 2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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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노래해


오늘 노래의 보석함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베르너의 가곡 ‘보았네, 한 소년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과 박목월의 시에 김연준이 곡을 붙인 ‘한 송이 들장미’를 감상하기로 한다. ‘보았네, 한 소년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은 세계 정상의 영국 아카펠라 그룹 킹스 싱어스(King’s Singers)의 해석을 추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UTUy7rvmw&feature=related

 ‘한 송이 들장미’는 1960~70년대 초 독일 뮌헨국립오페라단에서 활약하고, 이후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김영자의 노래를 감상한다

-http://www.krsong.com/skin/board/kplayer_audio/playerskin/kplayer/kplayer_audio.php?bo_ table=01_1&selected=16044,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 - 베르너 직접 지휘해 발표한 곡으로 대중에 인기
우리나라에서 ‘월계꽃’ 혹은 ‘들장미’로 번안돼 불리는 가곡들이 있다. ‘Heidenroeslein(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이라는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ㆍ1749~1832)의 시에 슈베르트(1797~1828)가 곡을 붙인 ‘월계꽃’과 하인리히 베르너(Heinrich Wernerㆍ1800~1833)가 곡을 붙인 ‘들장미’가 그것이다. 독일어로는 같은 시(詩)지만 우리말로는 다른 꽃이 됐고, 노랫말들도 본래의 시와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한번쯤 독일어로 된 괴테의 시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유는 괴테가 이 시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을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와 베르너 이외에도 당시에만 100명 이상의 작곡가들이 이 시에 곡을 붙였기 때문이다.



보았네, 한 소년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는

 너무 싱싱하고 해맑았다네

 아이는 자세히 보려고 한 걸음에 달려가

 벅찬 기쁨으로 그 장미를 보았지

 작은 장미, 어여쁜 장미, 빨간 장미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



 소년은 말했네. “난 널 꺾을 거야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야”

 장미가 대꾸했지. “난 너를 찌를 거야

 네가 나를 영원히 기억하도록

 그리고 꺾도록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작은 장미, 어여쁜 장미, 빨간 장미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



 그 사나운 소년은 꺾었다네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를

 장미는 저항하며 찌르고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었지

그저 당할 수밖에

 작은 장미, 어여쁜 장미, 빨간 장미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


 이 시에 등장하는 장미는 월계꽃도 아니고 들장미도 아니다. 괴테가 자기 머릿속에 심어 놓은 거친 벌판 위의 너무도 청순하며 가냘프고 작지만 어여쁜 장미꽃이다. 그 장미꽃은 미남 청년 괴테가 사랑하고 버렸던 소녀 프리데리케 브리온(Friederike Brionㆍ1752~1813)이기도 하다. 1770년 10월, 21세의 대학생 괴테는 18세의 브리온을 만나 10개월간 사랑하다가 떠났으며, 그 충격으로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괴테의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에 곡을 붙인 수많은 가곡 중에서 슈베르트와 하인리히 베르너의 곡이 애창되고 있다.

또한 둘 중에서는 베르너가 1829년 ‘보았네, 한 소년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지휘해 발표한 가곡이 슈베르트가 18세 때 ‘거친 벌판 위의 작은 장미’(1815년)라는 제목으로 작곡한 노래보다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 앞선다. 슈베르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베르너는 평생 84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른 작품들은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한 송이 들장미’-1973년 단 한 번 음반 취입돼 잘 알려지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슈베르트와 베르너의 가곡이 번안돼 불리는 이외에, 괴테는 꺾어 버린 장미를 차마 꺾지 못한 들장미로 윤색한 시에 곡을 붙인 탁월한 가곡도 탄생했다. 바로 박목월(1916~1978)이 작사하고, 김연준(1914~2008)이 작곡한 ‘한 송이 들장미’라는 예술가곡이다.



  들길에 피어있는 한 송이 들장미

  차마 못 꺾었네

  너무나 가련해, 너무나 애처로워

  꺾지를 못하고 그냥 지나쳐서

  되돌아보면 벌써

  꽃잎 져 버렸네, 져 버렸네



  나의 첫사랑은 한 송이 들장미

  아무도 아무도 꺾지를 않았으나

  지고 말았네

  들길에 지고 말았네

▶김연준의 음악인생

 ‘한 송이 들장미’는 ‘비가(悲歌)’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김연준 가곡집>(제7집ㆍ1973년)에 실렸다. 이 LP판에 수록된 12곡 중에서 ‘비가’(신동춘 작사)를 제외한 나머지 11곡 모두 박목월이 작사한 것이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작곡가 중에서 김연준만큼 특이한 음악가도 드물 것이다. 함경북도 명천의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노래를 썩 잘했으며 바이올린도 배웠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문학(시)을 전공하면서 발성법과 작곡을 개인지도로 익혔으며, 1938년 첫 독창회를 가졌던 청년 성악가(바리톤)였다.

 그러나 그는 1939년 25세의 나이에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하고 20년 만인 1959년 종합대학인 한양대학교로 발전시킨 교육자이자 선각자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1961년 평화신문을 인수해 대한일보로 이름을 바꿔 1973년까지 발행했던 언론인이었다.

 교육과 언론 이외의 사업에도 손을 댔던 김연준은 지천명(知天命: 50세)의 나이를 훌쩍 넘긴 1960년대 말부터 작곡가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평생 3600여 곡의 작품을 남겼다. 1971년부터 1981년까지 LP음반으로 발표한 가곡집만 16종이나 되니, 그의 초인적인 음악에 대한 집념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의 작품들 중 1973년 대한일보와 관련된 비리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오선지와 쓸 것이 없어 벽에 손톱으로 새겨두었던 암호를 종이와 펜이 반입된 후 옮겨 적었다는 ‘청산에 살리라’는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그러나 ‘청산에 살리라’ 못지않게 돋보이는 곡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 감상한 ‘한 송이 들장미’다. 이 곡은 1973년 단 한 번 음반에 취입됐을 뿐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 괴테가 살아서 자신의 시상(詩想)에 가장 알맞은 노래를 고른다면 슈베르트와 베르너의 그것을 제치고 김연준의 ‘한 송이 들장미’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애절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남자 성악가에 의해서 가사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이 곡의 훌륭한 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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