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의병서

<218>비어고

김병륜

입력 2012. 10. 0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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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병법·전쟁사·군사지리 등 정리한 책


저자·편찬시기 불확실하나 다산 정약용 글 다수 포함 “군대는 하루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 전달

조선 후기는 상대적으로 평화가 오래 유지됐던 시대다. 1592년의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은 후 1866년의 병인양요가 일어날 때까지 230년 동안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의 시대에도 국방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성찰하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쓰인 비어고(備禦考·사진)는 그 같은 고민과 성찰을 담은 거작(巨作) 중 하나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는 비어고는 조선시대 병법ㆍ전쟁사ㆍ군사지리ㆍ외국 정보 등을 다룬 주요 저서와 자료를 총 10권의 총서(叢書) 형태로 편집한 책이다. 이 책에는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전수기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일본고 등 조선시대 유명 인물이 군사ㆍ안보 문제와 관련해 쓴 글이 주제별로 실려 있다.

 비어고 1권에는 비어촬요가 실려 있다. 저자를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정약용이 한때 머물렀던 거처의 이름인 송풍암(松風庵)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봐 정약용이 지은 병법책의 일종으로 보인다.

비어촬요에는 행군방법, 위험지역 통과방법, 야전에서의 식량 수급 문제, 경계와 신호방법 등이 적혀 있어 정약용이 군사 문제에 매우 구체적인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소 1마리는 사람 50인의 하루 식량이라거나, 험로를 통과할 때의 구체적인 진형 등도 제시할 정도다.

 비어고 2권에는 전수기의·산성고·해방고 등 3종류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전수기의는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류성룡이 1594년에 지은 글로 전투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원칙과 주의사항을 10조목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류성룡은 전수기의에서 “척후와 요망(정찰대에 해당)이 없다면 눈먼 사람이 눈이 안 보이는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연못 근처에 있는 것과 같아 적군이 우리 부대 앞에 도착해도 알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하거나 조선군과 왜군의 장단점을 고려해 활로 숲 속에 매복해 전투를 수행하라고 제안한다. 어찌 보면 모두 뻔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이 같은 기본적인 전술원칙조차 지키지 못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류성룡의 안목이 남다름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산성고와 해방고는 조선 전역에 위치한 주요 산성과 수군 진영의 목록이다. 산성고에는 성의 크기와 위치, 연혁, 현재 상태 등을 지역별로 정리해 놓았다. 해방고에는 주요 지방군현에서 바다까지의 방향과 거리, 수영과 만호부 등 주요 수군 기지의 위치 등이 명시돼 있어 한눈에 육ㆍ해상 주요 방어거점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3~4권에는 정약용이 편집한 일본고가 실려 있다. 일본고는 중국 역사서와 병법 책에 실린 일본 관련 내용들을 총집대성한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 후기에 가상 적국이었던 일본에 안보 차원의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의 상황과 전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을 나름 분석하고 앞으로 일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항상 경계심을 갖고 관찰할 것을 주문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5~6권은 류성룡이 지은 유명한 징비록이 실려 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전말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한 책으로 유명하다. 7~8권은 총서 전체의 제목과 동일한 정약용의 비어고가 실려 있다. 이 비어고는 고려말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위화도 회군과 야인정벌,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주요 전쟁이나 전쟁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한 내용이 실려 있다.

 9권 비어전고에는 임진왜란 당시 판서(장관급)로 활약했던 이덕형(1561~1613)이나 도승지(국왕 비서실장)로 활약했던 이항복(1556~1618), 이순신(1545~1598) 장군 등이 국왕에게 보고한 문서를 주로 모아 놓았다.

 10권에는 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신유한의 기행문인 해유록과 청나라 만주족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이문환의 행적을 기록한 건주문견록이 실려 있다. 이 역시 우리나라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변국 사정을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안보 관련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어고는 전체적으로 완성된 수준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군사·안보 문제 관련 저서를 모두 모아 집대성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규장각에 소장된 비어고의 저자나 편찬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직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제목이 같지만 다른 사람이 쓴 책도 다수 남아 있어 혼란을 더한다.

 규장각에 소장된 비어고는 일반적으로 이중협이 편집한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도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이중협은 숙종 대에 도승지를 지낸 인물인 데 비해, 규장각에 소장된 비어고에는 조선 후기 정약용이 지은 일본고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용 중 상당수가 정약용이 지은 책이라는 점에서 규장각의 비어고는 정약용의 미완성 원고를 후대에 정리한 책일 가능성도 있다. 정약용은 문신 출신이지만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목민심서에서 “군대를 백 년 동안 쓰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하루라도 대비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고 말하는 등 군사 문제에 깊은 식견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아시아 안보정세가 심상치 않은 요즘이야말로 정약용이 군사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를 한번쯤 되새겨볼 시기인 것 같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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