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완결]세계의전사적지답사기

<27>이웃 나라에 숱한 침공·지배받은 룩셈부르크

입력 2012. 07. 1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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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나라, 천년을 짓밟아도 일어나다


1·2차 대전때도 獨에 점령 민족 정통·독립성은 지켜
아돌프 다리에서 본 룩셈부르크 성채와 포대의 일부 전경.
룩셈부르크의 시골 역 사이를 수시로 운행하는 완행열차.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민

 룩셈부르크(Luxembourg)는 세계지도에 영어로 국가이름을 영토 안에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나라다. 그래서 통상 Lux.로 줄여 지도 상에 표기한다. 제주도의 2배 크기 정도인 2586 ㎢의 국토면적과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 이렇게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해 외국 금융업자들의 구미에 잘 맞는 금융법과 세제법을 만들어 전 세계의 주요 은행들을 끌어모아 국가의 부를 축적했다.

 또한 EU 의회가 있는 수도 룩셈부르크 시는 1995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엄청난 관광객들을 유치했다. 룩셈부르크 국민의 연간 개인소득은 약 6만 달러! 이런 생활의 여유로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는 장미를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만나면 악단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경제 부국은 꼭 자연 자원이 풍부하고 넓은 국토를 가진 국가만이 가능한 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더구나 룩셈부르크는 한국과는 전통적인 우방국으로 벨기에, 네덜란드와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항상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준다. 이런 작은 나라에서도 6·25전쟁 당시 1개 소대의 병력을 벨기에군 대대에 배속시켜 한반도에 파병했다. 연 참전인원 85명 중 2명 전사, 1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25전쟁 관련 자료는 룩셈부르크 군사박물관에 상세하게 전시돼 있다.

 ▶전쟁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시의 성곽과 포대

 룩셈부르크 가(家)의 창시자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는 AD 963년, 오늘날의 수도 룩셈부르크 시에 성채를 구축하고 독립했다. 그 이후 1000여 년 동안 에스파냐·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의 숱한 침공과 지배를 당했으며 1·2차 대전 간에는 독일의 점령국으로 또다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북유럽의 지브랄탈’이라고 불리는 언덕 위의 룩셈부르크 요새는 400여 년 동안 약 20여 회 적군에게 포위돼 전쟁을 치렀지만, 끝까지 민족의 정통성과 독립성은 유지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의 반격통로에 있는 룩셈부르크는 본의 아니게 처참한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전 국토가 초토화된다.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 시의 명물인 아돌프 다리에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시내 중심부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웅장한 성채와 포대다. 그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침공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룩셈부르크 전몰용사들을 위한 ‘황금의 여신상’이 있다. 그러나 이 추모탑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철거되는 비운을 겪었다. 또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의 보크(Vock) 포대와 성곽은 룩셈부르크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성벽 속의 견고한 화포진지 생존을 위한 피와 땀의 결정체

 성벽 위나 포대진지에서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면 지금도 발끝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현대적인 건설기기가 없었던 당시에 이런 난공사를 위해 국민들은 거의 평생을 노역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군량미 확보를 위한 농경작업과 전쟁준비에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조들의 생존을 위한 피와 땀이 있었기에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 출근시간대의 룩셈부르크 시 중앙역은 등굣길의 학생들과 출근시민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작은 나라지만 시골 마을들을 연결하는 간선 철도가 잘 발달돼 있다. 역무원에게 룩셈부르크의 전쟁기념관을 물으니 잘 모른다. 다른 직원을 통해 겨우 안 것은 정부가 운영하는 기념관은 없고 기차로 북쪽으로 약 2시간 정도 가면 디키르히(Diekirch)라는 작은 마을에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군사박물관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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