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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김용식 육군일병

기사입력 2012. 04. 16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53

6·25전쟁 당시 낙동강전선 비학산 전투의 영웅

북한군 유격부대 습격에 특공대 일원으로 자원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 최초 태극무공훈장 추서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서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김용식 일병(사진·추서 계급·1931년 2월 8일~1950년 9월 29일)은 경기도 옹진군에서 출생해 강령초등학교와 옹진중학교를 졸업했다.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육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수도사단 17연대 3대대 9중대에 배치된 지 1개월 만에 전선에 투입됐다.

전투 경험이 전무한 그는 이등병 소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최일선에서 용감히 싸워 목숨을 바침으로써 군인정신의 표상이 됐다.

 1950년 8월 당시 북한군은 안강·기계 부근의 비학산에서 12사단과 766유격부대를 편성해 새로운 공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국군 18연대는 비학산을 탈취하기 위해 수 차례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비학산 공격작전권을 제17연대에 넘겨줬다.

‘북한군 제766유격부대 습격’의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9중대 3소대에 신병으로 배치된 김 일병은 특공대의 일원으로 첨병을 자원했다.

첫 작전에 투입됐으나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한 김 일병은 적 경계병을 순식간에 처치한 후,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군의 은거지에 기습공격을 가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1950년 8월 24일 비학산 전투에 참전한 김 일병은 다시 돌격작전의 선봉에 서서 적 진지를 측면기습해 적 군관 1명을 포함한 15명을 사살·생포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50년 9월 29일 김 일병은 경북 안강 시가지전투의 반격작전에서 적의 포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김 일병의 공적을 기려 1계급 특진과 함께 1951년 태극무공훈장을, 1954년에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스무살의 어린 나이에도 항상 가슴속에 태극기를 간직했던 김 일병은 뜨거운 애국심의 소유자였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했던 김용식 일병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후배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김홍희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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