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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바다에 핀 순국의 꽃’ 최성모 해군소령

기사입력 2012. 04. 02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50

“총알이 무서우면 해군이 됐겠느냐” 나포 위기 함정 구해

1962년 707함 부함장으로 동해경비작전수행 중 부하의 어리석은 월북 위협 행동 제지하다 순직

 “총알이 무서우면 해군이 됐겠느냐? 대포를 들이대도 조국을 배반할 수는 없다.”

 탕 탕 탕! 4.5구경 권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었다. 목숨 바쳐 조국을 사랑했던 최성모 소령(추서계급·사진·1931. 12. 16~1962. 4. 27)은 파도 높은 동해의 칠흑 같은 바다 위, 자신의 애함(PC-707 초계함)에서 부하들의 눈물 어린 간호의 보람도 없이 32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최 소령은 1931년 전남 구례에서 출생, 1951년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을 졸업했다. 평소 바다의 방패가 되겠노라 결심한 바가 있던 최 소령은 부모님께서 원하는 의사의 안락한 삶보다는 험난하지만 조국을 위한 군인의 길, 해군사관학교를 선택했다.

그는 1955년 해군소위로 임관(해사9기)한 이후 고된 함정근무 속에서도 충실한 근무자세와 과감한 리더십으로 부하들의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아 온 지휘관이었다.

1962년 4월 27일 최 소령은 자신이 미국에서 직접 인수해 온 707함의 부함장으로 동해경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동해안을 따라 항진하며 북한의 기습적인 해상침투 사전 분쇄와 대남 간첩선을 포착하기 위한 경계근무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중요한 임무였다.

새벽 1시 45분쯤 당시 함교 근무자인 최방순 수병이 불쑥 조타실로 들어와 돌연 최 소령에게 총을 겨누며 북으로 항로를 돌리라고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최 소령은 믿어지지 않는 돌발상황 앞에서도 “대포를 들이댄다 해도 결코 조국을 배신할 수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꾸짖으며 부하의 어리석은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

최 수병을 설득해 권총을 빼앗으려다 복부에 3발의 총탄을 입은 최 소령은 죽는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함장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렸고, 이로써 707함은 무사히 초계임무를 마치고 귀환할 수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죽는데 나라를 위해 떳떳한 죽음을 맞았다면 본인도 만족할 것입니다.”

 최 소령의 안타까운 순직 소식을 접한 그의 부친은 슬픈 중에도 오히려 의연함을 보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정부는 ‘함정 나포(拿捕)’라는 중대 상황 앞에서도 조국과 대의를 위해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책임을 완수한 최 소령의 전공을 높이 평가해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2001년 해군의 명예를 높인 참군인으로도 선정된 바 있는 최 소령의 의로운 순직은 바다에 핀 한 떨기 순국의 꽃으로 많은 해사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박부희 전쟁기념관 국군발전사 담당 학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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