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49>캘리그래퍼 강 병 인 - 육군21사단 복무

입력 2011. 04. 29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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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떨쳐내고 군서 얻은 긍정의 힘 신천지 펼쳐내다


군 복무 때 철책 근무를 하고 있는 강병인.
자신의 연구소 `술통'에서 강병인 씨가 군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병인이 현역 장병들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쓴 캘리그래피.

강병인은 누구?           
호는 영묵. 초등학교 시절부터 붓을 잡아 거침없이 글씨를 쓰는 삶을 지금껏 살고 있다. 드라마와 책, 광고와 상표 등에 표정이 있는 글씨, 자연을 담은 글씨, 영혼을 드러낸 글씨를 선보이며 국내 최고의 캘리그래퍼로 알려져 있다. 숭례문 복원공사 가림막 글씨에도 참여했으며 한글폰트인 봄날체와 상쾌한아침체를 출시했다. 캘리그래피연구소 술통(www.sooltong.co.kr)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가회갤러리에서 ‘봄날 오후 글꽃 하나 피었네’라는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KBS 드라마 ‘대왕세종’ ‘엄마가 뿔났다’,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진로 참이슬, 산사춘, 대포, 풀무원, 아침햇살을 거쳐 도서 ‘행복한 이기주의자’ ‘초한지’ ‘육일약국 갑시다’ ‘김대중 잠언집 - 배움’ 등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먹과 붓 그리고 영혼이라는 세 가지 조화가 천지인의 기운을 얻어 캘리그래퍼 강병인의 손끝에서 글씨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정보 전달의 기능을 넘어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이 접목된 붓글씨라 할 수 있는 캘리그래피.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찬사의 알파에는 영원히 먹을 갈겠다며 호를 영묵이라 지은 강병인이 글씨를 쓰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며, 오메가에는 뚝심 넘치는 장인의 고결함을 간직하고 있는 강병인이 한 편의 글씨를 끝내고 숨을 고르고 있다.

이름 석 자보다 글씨로 세상과 먼저 소통해 온 그에게 군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이 하나 있다. 근무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시행했다는 ‘30분 먹 갈기, 한 시간 글쓰기’. 모두가 잠들어 있는 그 시간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얻어 글씨를 쓰기에 가장 완벽한 찰나였다고 말하는 그를 인터뷰하며 묵묵히 외길을 걸어가는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열 수 이상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어디 보자. 입대가 언제였더라. 가물가물하네요. 군대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 시기가 이젠 옛일이 돼 버렸다니….

1983년 5월에 입대해서 85년 8월에 제대했을 겁니다. 논산훈련소로 입소했고 춘천을 거쳐 육군21사단에서 근무했지요. 인터뷰 전 과거의 기억을 곱씹어 봤는데도 번쩍이는 불꽃처럼 섬광을 일으키며 떠올라야 할 것들이 흐릿해져 가네요.(하하) 일반 보병이었는데 나중엔 행정병으로 근무했지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고 흐느끼게 하던 그곳에서 2년 넘는 기간 동안 살았답니다. 그 말만 들어도 그렇게 위축이 됐는데 거기에 철책근무라니, 처음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겁니다. 제가 GOP 근무를 시작하고자 대기하는 동안 사고도 많았더라고요. 더욱 긴장이 되고 겁도 나고…. 하지만 ‘부닥쳐 보면 인생, 별것 아니다’라는 깨달음도 그때 얻었던 것 같습니다.”

 안개처럼 잔잔하기만 한 그곳. 가상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것만 같은 막연함, 그리고 안타까움. 이러한 감정들이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감겨 있는 GOP 근무를 통해 살아 돌아온 것보다 더 큰 경험을 했다고 고해하듯 이야기를 꺼내는 강병인.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지고 멋지게 군 생활 한번 해 보자는 FM 정신까지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군인정신으로 재무장한 그에게 주어진 업무가 하나 더 있었으니, 워낙 어린 시절부터 글씨를 써서인지 차트 글씨, 붓글씨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대대장 추천으로 연대 인사과 기록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정말 이태리 장인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장인의 정신으로 글씨를 쓰며 군 생활을 퍼펙트하게 마친 그. 올바른 삶의 길이 돼 준 FM 정신으로 무장하고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었던 군 생활이었기에 예비역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재입영통지서의 꿈을 오히려 흐뭇한 웃음으로 받아넘길 수 있다는 강병인은 대한민국 육군 FM 병장 강 병장이었다.

 “제가 근무했던 80년대에는 사건 사고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청춘의 고민이 시작됐던 것이지요. 그런데 결코 흐트러지지 않도록 절 잡아 준 동기가 있습니다. 정운일 병장. 외롭고 힘들 때 커다란 버팀목이 돼 줬으며 삶의 단편, 미래의 퍼즐 등을 함께 그려 보고 끼워 맞춘 전우랍니다. 생의 단면을 들여다봤을 때 한 명의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가치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강병인이 있었을까요?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GOP 근무를 통해 쌓아 온 경험의 축적이 글씨를 쓰면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강병인은 말했다. 안정적으로 힘을 분해할 수 있으며 여유로운 절제미마저 글씨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의 군 생활의 방향은 이 당시부터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아픔을 지닌 채 살아야만 했던 삶의 편린 속에서 군대는 정말 180도 확 달라져 버린 도전이었지만 그는 긍정의 힘을 믿으며 헤쳐 나갔다.

아무도 없는 정글 한가운데에 던져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옆에서 손을 뻗어 일으켜주기도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도록 방향등도 켜 주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과 기대어 서 있는 ‘사람 人’을 쓸 때 그의 마음가짐은 유난히도 벅차오르리라. 제대 전 사단 훈련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주일을 연기한 후 제대한 기억도 그에게는 오히려 감사함이었다.

 “긍정의 힘을 절대 부정하지 마세요. 삶의 방향등과 같은 큰 힘이 돼 준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마세요. 전 새벽 1시에 근무를 마치고 나면 30분 먹을 갈고 한 시간 글씨를 쓰는 수양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잠이 쏟아지더라도 묵묵히 지켜 나갔습니다. 저와의 약속이었지요. 지금의 강병인은 그때 다져 놓은 강병인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감사합니다.”

 <조기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iammax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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