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48>뮤지컬 배우 윤 길

입력 2011. 04. 2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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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배려… 군서 몸에 익힌 `키워드'


 `시카고' `미스 사이공'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컨택트' `코러스 라인'까지….

이 작품들에 출연한 배우 윤길의 이름 앞에는 수식어가 하나 붙는다. 바로 뮤지컬. 그는 노래·춤·연기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야 브라보를 받을 수 있는 뮤지컬 배우다.

그리고 그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바로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예지원 맞선남.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운 그를 만나 보니 필자만의 수식어를 붙여 주고 싶었다.

드림메이커라고…. 실제 뮤지컬 배우로 오랜 기간 살았던 필자에게 그의 모습은 또 다른 나를 바라보게 하는 설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꿈을 이뤄냈으며 지금 앞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필자는 그 꿈을 접고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아직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기에.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에. 그래서 그와의 인터뷰는 추억의 한 페이지에 몰래 숨기고 싶은 행복함이었다.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윤길의 다양한 웃는 표정(위)과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모습.

윤길(본명 윤덕선)은…
1975년 1월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뮤지컬 ‘더 리허설’ ‘토요일 밤의 열기’ ‘고고비치’ ‘아이다’ ‘미스 사이공’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컨택트’ ‘더콘보이쇼’ 등에 출연했으며 연극 ‘논쟁’으로 언론 및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SBS 예능 프로그램 ‘골드미스가 간다’에 예지원의 맞선남으로 출연해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5월 13일에 입대해 정확히 1999년 7월 12일 전역했습니다. 칼 같은 2년 2개월이었네요, 그러고 보니 의정부 306보충대로 입소했고 육군9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자대 배치는 제1포병여단이었지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삶을 살다가 입대를 했습니다. 문선대로 가는 건가?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냥 포병으로 살았답니다.(하하) 그래도 생활관에서는 많이 신기해했었죠. 배우가 왔으니까요. 그러니 다들 여자 연예인을 묻느라 바빴지요. 그런데 뮤지컬 배우 중에 알 만한 사람이 있어야죠. 학교 동기였던 우희진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당시 ‘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 중이었으니 얼마나 인기 최고였겠습니까? 희진이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제 인기 또한 덩달아 하늘을 찔렀답니다.(하하)”

 학교를 졸업하고 배우 인생을 살다 뒤늦게 24세에 입대한 그에게 군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 윤길에게는 항상 좋은 일들만 함께했었나 보다. 이등병 시절 취침시간 중 누군가 깨워서 일어났더니 중대에서 가장 무서운 병장이 숨겨둔 소주 한잔을 건네며 ‘나이 들고 와서 힘들지?’라며 등을 토닥여 줬다고 한다.

군 생활에 힘이 됐던 에피소드는 또 있다. 무신론자였지만 성가대를 통해 배우로서의 감을 잃지 않고자 교회를 나가게 됐는데 설교를 들으며 힘도 얻고 군인의 활력소인 펜팔이라는 기회까지 얻었다고 한다. 물론 영원불멸의 간식 초코파이를 먹게 되는 기쁨까지.

교회 촌극의 대본·안무·연출까지 맡아 무대에도 올렸다니 작은 것에서 느끼는 큰 행복을 몸소 체험했다며 배시시 웃는 배우 윤길.

 “주위에서 소소하게 발견하는 행복의 단편들을 모으다 보니 군 생활이 생각 이상으로 괜찮아지는 거예요. 얼차려를 받아도 내 건강에 도움이 되겠거니, 새벽같이 일어나도 배우로서 몸 만드는 거니 정석대로 해야겠거니, 쉬지 않고 훈련받아도 게으른 성격 제대로 뜯어고치겠거니 하는 긍정의 힘이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너무 신기했지요. 휴가 중에 친구들을 만나도 다들 “군 생활 재미있나 보네”라며 부러워했으니까요. 보통은 힘들다며 국방부 시계는 언제쯤 움직이느냐고 투덜대잖아요. 전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잘생긴 사람이 성격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일련의 세상 원망 같은 넋두리.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배우 윤길에게 딱 어울렸다. 그는 인간적인 매력을 듬뿍 머금은 천생 배우였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동기 칭찬에 여념이 없다. 바로 심용현 병장. 같은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받았으며 자대 배치도 중대까지 같았다고 한다. 다만, 생활관만 건너편이었으니 정말 깊은 인연이었을 터.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심히 생활했던 나이 어린 동기와의 깊은 우정. 면회 때마다 꼭 불러내서 함께 음식을 나눠 먹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여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미소 3종 세트 중 추억의 미소를 날리기 시작했다. 미소가 아름답다는 팬들의 평가가 그냥 나온 말은 아니었다.

 “요즘엔 1년에 한 번 정도 전화로 안부만 묻곤 하지요. 얼굴을 보지 못한 지도 꽤 됐네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동기 하나 잘 만나서 참 마음 편하게 군 생활한 거 같아요. 이것도 큰 복이지요.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는 장거리 종목인 인생, 그중 짧디짧은 찰나일 수도 있는 군대에서 말이죠. 굳이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회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 참 많이 들었습니다. 대인관계, 배려심, 작은 사회생활 이런 키워드들만 차곡차곡 쌓아 가도 군 생활을 꽤 매력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순간에 충실한 군 복무가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화를 이뤄낸다는 말은 진리 같아요. 군인이 있으니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엄친아처럼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뮤지컬 배우 윤길. 교회에 다니면서 펜팔했던 여학생에게 그는 정말 착한 교회 오빠였을 것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빛을 내는 그를 보면 폭발하듯 뜨거운 카리스마 때문에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다. 필자 역시 그의 팬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 선 그를 조금 안다. 그래서 부럽고 부러우며 부러운 것이다. 내공이 쌓인 뮤지컬 배우, 그 내공의 시작은 입대부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색다른 추측을 해 본다.

 

<조기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iammax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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